나는 죄수생이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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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수를 생각한다는 학생들의 연락이 많이 오고있습니다..
국어때문에 최저를 못맞추었다는 학생들도 많고,
전체적으로 시험이 어려워서 재수를 결정한다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내용 중 하나는
선생님은 재수가 힘드셨나요? 입니다.
네 힘들었습니다.
거짓말은 못하겠네요.
정말 힘들었고 그렇기에 그만큼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자부합니다.
단순히 한번 더하겠다는 생각이 아닌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조건, 목표들이 필요한게 재수입니다.
재수를 위한 실용적인 조언들은 지금 아직 시기가 이르니 나중 칼럼으로 미루도록 하고,
이제 원서를 써야하는 시즌에 정말 진지하게 재수를 생각하는 친구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즐겁게 그동안의 버킷리스트를 채울 때 재수가 얼마나 힘들까 고민하면서 아파하는 친구들에게
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재수생 때 겪었던 일들
그리고 힘들었던 일들에 대한
간단한 회상입니다.
누구나 그렇지 않았을 수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되지 않을 수있다고 말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이었던
그당시 내가 그리고 우리들이 느꼈던 감정에 대한 회고입니다.
2009년 2월 13일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얼굴근육은 애써 입의 양꼬리를 잡아올렸지만
그건 웃는게 아니라 울음에 가까웠다.
겨울방학 이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서
내 정확한 대입결과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친구들은
내 수능점수에 대한 부러움과 축복의 의미로 나에게 어느 대학을 진학하냐고 물어왔고
나는 스카이를 간다고 대답했다.
축하한다는 친구들의 놀람 그리고 어디냐고 재차 물어올 때
실은 스카이는 맞는데 스카이에듀 재수학원에 장학생으로 가게 되었다고 웃었다.
평소보다 더 크게 웃느라 기침이 걸려서 눈물이 살짝 났다.
지극히 자조적이고, 처절히도 떳떳해보려는 몸부림이 그날 하루 내내 지속되었다.
졸업식은 정말 너무 길었다.
2009년 2월 14일
여자친구와 마지막으로 식사를 했다.
한살어린 여자친구는 이제 곧 고3이될 예정이었고
나는 강원도 작은 도시가 아닌 처음으로 서울에서 수험생활을 하기위해 그날 오후 차를타고 떠나기로했다.
여기서 같이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리고 그런 말을 그 아이의 작은 입에서 수도없이 조물거렸겠지만.
결국 그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서울에 가면 서로 다신 보기 힘들거고
무용을 하느라 바쁜 소녀와 기숙사에 들어가서 핸드폰도 거의 사용하지 못할게 뻔한 소년의
장난스러웠지만 나름 진지했던 연애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충분히 서로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를 입밖에 꺼내지않았다.
힘내라는 말들 잘될거라는 위로는 각자의 귀에 마지막 인사처럼 들렸을거고
결국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구체적인 날짜가 기억나는 일들은 2월 13일 그리고 14일 뿐이다.
올라오고 난 당일부터 정신없이 오늘이 무슨요일인지도 알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서울은 복잡한 도시였다.
평생 인구 30만도안되는 강원도 작은 도시에서 살았고
서울은 기껏해야 가까운 수원고모댁에 몇년에 한번 씩 올 때 정도 멀찍이서나마 구경했었다.
지하철을 타는것도 처음엔 어설퍼서 왼쪽에 카드를 찍었다가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당시에는 친한 친구도 하나 없이 혼자 적응하며
동시에 공부에 집중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다니게 된 학원이 신촌인지라
학원 유리창 너머로 커플들이 지나가면 두고온 여자친구 생각이 났고
내가 갈 수 있을거라 여겼던 학교의 과잠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가면
나도 저 무리 가운데 있을 수 있었는데, 그럴 자격이 있었는데... 라는 생각만 들었다.
더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마음속에 탑을 쌓았지만
그 기저에는 이미 한번 믿음이 무너져버려 생긴 위태로운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완벽히 자신있었을때도 실패했는데
이런 흔들리는 마음가짐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책과의 싸움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속삭이는 내면의 나약함과의 싸움
그게 내 하루 일과였다.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항상 자기들을 죄수생이라고 부르곤 했다.
실패해서, 부모님께 죄송해서, 그리고 갇혀있어서, 자유롭지 못해서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얼마나 많은 접점이 있느냐로 비유를 판단한다면
죄수생이라는 단어는 훌륭한 표현이었다.
자조적이고 우울한 단어였지만,
그 속에는 언젠가 감옥을 벗어나 자유를 얻으리란 기대감도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죄수생으로써 받는 고통을 나만 달게 받는다면 괜찮았겠지만
연좌제마냥 부모님들까지 나로 인해 가슴 아파하곤 하셨다.
4월 어느 밤 전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옥상밖에 없던 학사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으레 표현을 잘 못하는 여느집 아들들이 그러하듯
어머니의 안부전화에 '네네 잘먹고 잘지내요', '건강해요', '공부잘하고있어요' 같은 상투적인 대답만 하고있었을 때 였다.
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내신 것 같다.
분명히 나는 그 말을 먼저 했을리가 없으니까.
남들만큼 학원이라도 진작 보내고 과외라도 시켰더라면 그 고생을 안했을 텐데,
아니면 어느정도 잘 나온 성적표로
그저 퉁명스럽고 널 괴롭히던 담임선생님이 아닌
제대로 된 입시전문가에게 원서를 맡겼으면 나았을텐데
어머니는 어느순간부터 울면서 말씀하고 계셨다.
수많은 '만약에' 라는 가정들이
지금까지 어머니의 가슴속에서
나만큼 혹은 그 이상의 빈도수로 휘몰아쳐왔을테고
그것이 그때 바로 그 순간에 폭발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내가 가끔 학사 철제 침대에 누워서 세상을 원망하다가 내린 결론,
꼬리를 물고 물어 결국 '애초에 우리집이 남들만큼만 살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래도 마음속 일말의 무언가가 나를 슬며시 되돌리곤 했는데
그 '애초에'란 놈은 나뿐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속에도 조금씩 가시를 밀어넣고 있었다.
나만 힘든게 아니라, 죄없는 부모님까지 아파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뒷통수를 망치로 맞은것 마냥 놀라고 너무 죄송해서 순간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순간 다행스럽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나와주었다.
"무슨 그런생각을 하세요!! 말도안되는거죠 ㅋㅋ 공부안해서 대학못간거지 애초에 공부잘했으면 원서망칠일도 없었어요"
"좋은 머리 주셨는데 안써가지고 재수하는거에요 여기서 오히려 더 깊게 생각하고 뭔가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있으니까 걱정마세요, 지금 취침시간이니까 빨리 핸드폰 반납해야해서 끊을게요!"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더이상 말을 길게 끌면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할 것 같았고 내가 우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어머니의 죄의식이 몇배는 증폭될테니, 이쯤이면 충분하겠다 싶었다.
다행히 내 생애에서 가장 완벽한 목소리 연기는 성공했고, 목적은 달성했지만 나는 옥상에서 부슬비를 맞으면서 오랜시간 들어가질 못했다.
눈물이 그치질 않아서 행여나 다른애들이 볼까봐 그렇게 어두운 옥상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중에 재수가 끝나고 대학교에 다니면서
남동생의 하숙집을 보면서 어머니가 저런곳에서 어떻게 사냐고 걱정된다고 말씀하셨을 때
아버지는 장난식으로 말하셨다
그래도 장남이 장남이긴 한가보다
학사는 여기보다 시설이 더 좋은데도
네 엄마는 너 재수학사들어간 뒤에 돌아오면서 서울에서 원주까지 오는 내내 울었다고.
동생 하숙집 보고는 그래도 안우시잖아?
겉으로는 뭘 그리 우셨냐고 장난스럽게 받아쳤지만
나는 내 결과가 단순히 내 노력이 아닌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로 이루어졌음을 그땐 이미 알고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6월모의고사가 지났고 여자친구와는 결국 완전히 연락이 끊겼고, 어머니의 걱정도 조금 덜해져갔다.
생활에 익숙해져서 공부에 집중이 되기 시작하면서, 현역때는 시도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나만의 공부방법들을 시작했고,
시간에 쫒기면서 간신히 쌓아올렸던 위태로운 수학도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재건축을 해나갔다.
하지만 평생 해온 공부 버릇을 고치는것은 힘들었다.
애초에 재수학원을 다니더라도 나의 독학 위주 성격은 버리지 못하고
수업시간에도 집중을 못하면서 반쯤 자습으로 공부를 하다가
담임선생님과의 트러블이 생겨서 결국 재수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재수학원을 그만두면 비싼 학사에 있을 필요도 없었고, 마음같아서는 학사에 남아서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사정때문에 결국 집으로 내려가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을 때였다.
재수를 하는 기간동안 같은 고등학교에서 나를 따라 학사에 들어온 친구가 3명이 있었고, 그중 한명이 학사원장님께 내 사정을 이리이리 말씀드린 것이다.
원장선생님은 학사에 들어가는 돈도 적게 만들어주시고, 새로운 재수학원에도 무료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주선해주셨다.
최상위 반이었던 1반에 자리가없어서 2반에 넣어도 괜찮냐고 물으시는 학원원장님께
전혀 상관없다고 그냥 공부할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2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냥 형들 한둘과 대화하고 나머지 사람들과는 교류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서울에 남아 터치받지 않고 자유롭게 내 방식대로 공부를 하며 결국 9월 모의고사를 보게되었다.
단순 강의를 듣는게 아닌 나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얼까 고민하면서 모든 과목에서
나름 나만의 실험들을 진행했었고.
정신없이 공부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지내다가 결국 9월이 되었다,.
그리고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나는 전국 30등 그당시 M사 재수학원 내 1등이라는 내 자신에게도 충격적인 점수를 받게된다.
그와 동시에 결과를 본 직후부터 나는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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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3개월간의 이야기와 대입까지, 그리고 제 재수 방식과 방법에 대한 분석은
다음편에 이어서 계속하겠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이 잘 안와도 좋습니다.
애초에 이건 지금까지 국어 칼럼들 썼던 내용처럼 정보를 전달하는 글도 아니고
많은 학생들의 물음
선생님은 재수 때 힘드셨나요? 에 대한 대답입니다.
제 경험이고
저만 떠올릴 수 있는 생생한 증언입니다.
다만 제가 재수 상담 때 마다 항상 하는 한마디를 덧붙이겠습니다.
재수는 정말 힘들다, 최선을 다하는 재수는 더욱 더 고통스럽다.
하지만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은 고통이다.
남들이 그렇다고 했고,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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