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수능을 결심하신 분들께 드리는 지극히 주관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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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논술 강사를 하고 있는 친구한테 연락을 받았는데, 자기가 논술을 가르친 재수생이 오늘 논술 시험을 본다고 하더군요. 주요 대학들의 논술이 한창 진행 중이고 수능 결과나 논술 결과에 따라 또 한 번 수능에 도전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하실 때라 생각이 드는데요. 또 한 번의 수능을 결심하신 분들께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을 드리고자 글을 적습니다.
우선 재수를 경험한 제 입장에서 저는 N수를 추천하진 않습니다. 또 다시 수험생의 길을 걷는다는 게 사람마다 다른 무게로 다가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 1년 더 준비를 한다 해서 결과가 더 좋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저는 섣불리 “한 번 더 도전해봐”라는 말은 하지 않는 편입니다. 제 현강을 듣고 있는 학생들한테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드리는 말씀은 또 한 번의 수능을 결심한 분들에 한정된다는 점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2005년에 재수를 했습니다. 이제 11년이 되었네요. 정시로 대학에 진학하려 했던 저는 2005년 2월초에 제가 지원한 대학들의 합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능 전까지만 해도 재수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저였기에 재수를 결심하기까지 한 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졸업식에서도 ‘재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생각 밖에 안 들더군요. 그리고 결국 부모님께 다시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모님께선 흔쾌히 좋다고 하시더군요.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도 인강이 나름 활성화되어 있었는데요, 저는 인강 중에 어떤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했고 ‘실제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 좋지 않겠나’ 라는 생각에 부모님께서 알아오신 학원에 다니기로 했습니다.
3월초가 되어 등록을 하러 가니 이미 2월에 반 배치고사가 치뤄진 상태라고 하더군요. 다행히도 학원측에서 ‘수능 성적이 좋은 편이니 수능 성적표로 반 배치 고사를 대체해주겠다’고 해주셔서 그 학원을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약 8개월 여의 시간 동안, 인천에서 교대역에 이르는 왕복 3시간 코스의 재수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지각하지 않으려고 아침 6시에 집에서 출발한 것을 제외하곤 할만한 생활이었습니다. 반 친구들도 좋은 아이들이고 선생님들 강의력이나 공부 환경에 있어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나름 상위권 학생들이 N수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했고, ‘이 학원에서 모의고사 몇 등이면 전국에서 몇 등 정도 된다.’는 얘기도 있고 해서 ‘이제 좀 만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던 재수생활에서 제가 느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뒤쳐지고 있지 않나’라는 불안감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또 한 번의 수능을 고민함에 있어서 따져보는 것들이
1. 일년 더 연장된 수험생 생활이 힘들진 않을까
2.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진 않을까
라고 알고 있는데요, 제가 재수를 경험해본 결과 이런 것들보다 더 큰 어려움은 ‘내 인생이 뒤쳐지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성격이 급한 편입니다. 거기에 ‘남들보다 앞서가야 한다’고 교육 받아 왔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온 입장에서 다른 애들보다 일 년이 뒤쳐진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오더군요. 그리고 생일이 가까워오니 병무청에서 신검을 받으라는 통지가 날라왔습니다. 남학생분들 중에는 이미 경험해본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뭔가 기분이 묘하더군요. 뭔가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나라에서 날려주는 기분 나쁜 생일빵의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해 원하던 만큼의 성적은 아니지만, 현역 때보다 좋은 성적을 얻어 목표로 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에 가면 쫓기는 기분이 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입학해보니 45명 남짓한 동기들 중에 N수생은 열명 정도 밖에 안되더군요. (지금의 1학년들은 구성이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다른 동기들보다 일 년 늦게 들어왔으니, 서둘러야 해.’라는 마음에 군대 포함 6년 안에 대학을 졸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2010년 3월 말이 전역 예정일이었던 저는 그 해 1학기에 학교를 다니기 위해 말년 휴가를 나와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렇게 뭔가 대학 생활에서도 재수 1년으로 인해 뒤쳐졌다는 생각으로 알게 모르게 계속 쫓겨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만 5년이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 제가 느꼈던 ‘뒤쳐진다는 불안감’이라는 것이 과한 걱정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무 살의 나이로 보기에 긴 시간 같았던 일 년이, 인생이라는 긴 흐름에 있어서는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수를 하며 경험했던 내용들이 제게 소중한 자산이 된다는 생각도 들고요.
서두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저는 여러분께 N수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또 한번의 수능을 결심하신 분이라면 ‘내가 뒤쳐지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여기에 더해 이미 N수를 결심하신 분이라면 N수로 인한 부모님의 재정적 부담은 너무 크게 생각하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일 년 간의 재수 비용을 대학에 합격한 이후 알게 되었어요. 부모님께도 그 때 처음 여쭤봤고요. 여러분께 부모님의 고마움을 느끼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공부 외적인 요인들에 계속 마음을 두다 보면 같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도 상대적으로 그 효과가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여러분들께서 공부에만 집중하시는 게 부모님의 입장에서도 바라시는 일이라 생각이 드네요.
이맘때가 되면 또 한 번의 수능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고, 또 한 번의 도전을 결심했다 하더라도 많은 걱정들이 생겨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제 경험을 토대로 한 말씀 올렸습니다. 주저리주저리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 드리며, 또 한 번의 도전에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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