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575532] · 쪽지

2016-01-07 15: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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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악안면외과 의사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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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악안면외과의사로 살아가기

“치과에서 이런 것도 하나요?”

치과대학에 들어와 구강악안면외과를 전공으로 택한 이후에 수없이 들어온 질문이다. 치과의 시작이 구강외과이고 치과대학 교육과정의 많은 부분이 다른 어떤 전공보다도 구강외과와 깊은 연관이 있음에도 아직 치과하면 보존, 보철, 교정을 떠올리나보다.
다행히 최근 양악수술이 유행하면서 예전보다 구강악안면외과를 설명하는게 쉬워졌지만 여전히 그러한 질문은 반복되고 있다. 수련의 초반에는 응급실에서 만난 고등학교 수련원 동기인 의대 여자 인턴으로부터 “넌 왜 치대가서 의대같은 걸 하려고 해”라는 질문을 받고 “그러게… 남들이 잘 모르는 걸 도대체 내가 왜 시작했을까”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잠시 겪기도 하였지만 하면 할수록 이건 ‘치과에서 하는 게 맞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우리 전공의가 입원 중 급성으로 위출혈이 발생한 환자에게 피를 달아주고 양압수혈을 시행하고 있을 때 보호자가 치과선생이 위독한 어머니 치료를 하고 있다고 소리지르며 병동에서 소란을 피운 일(이후로 명찰에 구강악안면외과를 달기위해 노력을 했으나 병원 규정상 법적으로 전문의가 아닌 관계로 정식 명찰에는 안되고 가운에만 간이로 바꿀 수 있었다), 응급실에 내원한 안면골절 환자를 처치할 때 명찰에 쓰인 치과를 보고 보호자가 의심을 하여 응급처치보다 환자보호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설명해야 했을 때, 성형외과에서 잘 못 처치한 턱골절 환자가 치과에 와서 성형외과 선생님이 수술은 잘되었는데 이제 치과에서 교합만 잘 맞추면 된다고 하였다고 치아를 맞춰 달라고 했을 때 직장 동료만 아니면 고발하라고 하였겠지만 문제 안 생기게 설득해서 재수술 해야 했을 때……. 정말 글로 쓰자면 책 한두 권은 족히 될 이야기들을 겪으며 구강악안면외과 의사로 살아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얘기가 그저 남의 일이거나, 아니면 그 고생을 왜 사서 하나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물론 구강악안면외과를 전공한 사람들도 이 고생을 알고 한 것이고 또 그 고생에 대해 다른 치과의들로부터 칭찬을 듣기 위해 한 것도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강악안면외과 전공자들의, 어찌보면 ‘자아도취성’이든지 아니면 인생의 계산이 부족한 ‘순진무구성’이든지 간에 그들의 노력으로 치과는 더욱 풍부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보다 많은 질병을 다루는 의료인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게 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또 현실적으로도 개원가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있는 환자를 의뢰받아 처치하고, 또 환자와의 분쟁에서 의뢰해주신 의사분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가 없는 불철주야(구강외과는 당직이 기본 임무이다)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불혹이 중반을 넘어선 지금 돌이켜 보면 어려서는 이런 상황(알아주지도 않는데 나름 숭고한 일을 한다?)에 자만과 오기로 그냥 독하게만 살아왔던 것 같고, 이제 인생의 완숙기에 들어서는 뭔가 이러한 문제점을 합리적으로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다.
10여년전 독일에 유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합리성을 따지는 나라답게 구강악안면외과의 영역은 의과와 치과에서 모두 매우 독립적으로 인정받으며 기능과 미용적인 측면이 요구되는 구강암, 악안면성형, 재건, 양악, 악골골절, 고난도 임프란트 등의 처치를 다른 과가 건드리지 못하는 특화된 영역으로 진료하고 있었다. 이는 구강악안면외과가 매우 고유한 치과의 영역이라는 객관적인 증거일 것이다.
최근 치과계는 전문의 경과규정 문제로 시끄럽다.
다행히 이제 전문의제 시행 이후 수련을 마친 제자들은 개원해서도 정체성의 혼란을 비교적 덜 겪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제도 시행 직전의 더 많은 젊은 제자들과 또 공직에 남아있는 많은 교수들, 또 그동안 열악한 여건하에서 개원의로써 구강악안면외과 발전시키고 지켜온 양악수술 전문 구강악안면외과 전공자들은 내년이면 여전히 인정 못받는 전문의로, 많은 마음고생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이제까지 구강악안면외과는 일반 개원의 선생님들과 서로 윈윈의 상호 도움을 주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간 많은 문제 환자들을 처치해 드렸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 구강악안면외과가 중환과 생명을 다루는 당당한 치과의 한 분야로 존재함으로써 주변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치과의의 역할을 자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논의 중이긴 하지만 전문의 경과규정 문제는 결국 다시 한 번 많은 일반 개원의 선생님들의 의사로 결정될 것이다. 그간 우리가 힘들게 지켜온 우리의 영역, 치과의 주요 분야로서의 구강악안면외과를 더욱 튼튼히 지켜나갈 수 있도록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돈 많이 벌고, 잘난체 하려고 전문의 받으려는 것 아니다. 희생하는 만큼 맘 고생 좀 덜하고, 전문의 받은 후배나 성형외과에 치이지 않고 생존하고, 그저 내가 잘 하는 것 좀 쉽게 알아주는 환경에서 살기위해 전문의를 받고 싶은 것이 경과 규정 대상 구강악안면외과의사들의 작지만 절절한 바람이다. 치과의 한 분야의 애환을 같은 동료들에게 이렇게 시시콜콜이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야속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치과 동료들에게 너무 감사할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이부규
치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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