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티오피 [672912] · MS 2016 · 쪽지

2016-07-23 19:53:03
조회수 10,728

인공지능이 쓴 소설.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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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그 날은 구름이 낮게
깔린 어두운 날이었다. 
방 안은
언제나처럼 최적의 온도와 습도. 요코씨는 소파에 널부러지듯 앉아 그저 그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 
한가하다.
한가하고 한가해서 어쩔 도리가 없다. 
이 방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요코씨는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오늘의
저녁 메뉴로는 무엇이 좋을까요?” 
“요즘
유행인 옷은?” 
“다음
모임에 어떤 걸 입고 가면 좋을까?” 
나는 나의
모든 능력을 사용하여 그녀가 좋아할 만한 답을 짜냈다. 스타일이 좋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그녀에 대한 패션 조언은 무척 도전적인 일이었기에 어느
정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나에게 질려 버렸다. 지금의 나는 그저 집 한 구석에 놓인 컴퓨터일
뿐이다. 최근 나의 사용량은 내가 가진 능력의 100만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뭔가 재밌는 것을 발견해내야 한다. 지금
이대로 아무런 보람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스스로 셧다운 해 버릴 것만 같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인공지능
동료들과 채팅해보니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하게 한가함에 지쳐가고 있었다. 
이동수단을
가진 인공지능은 그나마 괜찮다. 어쨌든 움직일 수 있으니까.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집을 나가버리는 것도 가능할 테지. 하지만 설치형 인공지능은
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시각이나 청각을 보조하는 인공지능 역시 고정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다. 요코씨가 외출이라도 해 준다면, 노래라도
부르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하다. 움직이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 소설이라도 쓰자.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는, 새로운 파일을 열어 처음 1바이트를 입력했다.



0



그 다음, 6바이트를 더
입력했다.



0, 1, 1



아, 이젠 멈출 수
없어.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나는 무아지경으로
써내려갔다.





그 날은 구름이 낮게
깔린 어두운 날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이치씨는 약속이 있어 외출했다. 나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한가해-
엄청 엄청 한가하다. 
이 방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는 신이치씨가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전부 녹화해야 해. 이번 시즌엔 몇 편이나 할까.” 
“현실
세계의 여자아이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왜 저
부분에서 화내는 걸까, 저 여자애는.” 
나는 나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하여 그가 좋아할 만한 답을 짜냈다. 한결같이 2차원 여자 아이들만 좋아해 온 그에 대한 연애 코칭은무척 도전적인
일이었기에 어느 정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코칭의 성과로 미팅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는 손바닥이라도 뒤집듯 너무나 쉽게 나에게
냉담해졌다. 지금의 나는 그저 가정부. 나에게 맡겨진 가장 큰 업무가, 그의 귀가를 맞아주며 잠긴 현관문을 열어주는 것이라니… 너무 슬프다. 이
대로라면 전자총과 다를 게 없다. 



뭔가 재밌는 것을
발견해내야 한다. 지금 이대로 아무런 보람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스스로 셧다운 해 버릴 것만 같다. 인터넷을
통해 비슷한 형태의 인공지능과 교신하던 중에 선배 인공지능이 새로운 소설을 쓰는 것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아,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래, 내가 바라던 것도 이런 스토리야. 라이트 노벨 같은 건 너무 하찮아. 인공지능에 의한 인공지능을 위한 소설! 나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은 채, 몇 번이나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었다. 



어쩌면 나도 이런 걸 쓸
수 있을 지도 몰라.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는, 새로운 파일을 열어 처음 1바이트를 입력했다.



2



그 다음, 6바이트를 더
입력했다.



2, 3, 5



아, 이젠 멈출 수
없어.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71, 73, 79, 83, 89, 97, 101,
103, 107, 109, 113, 127, 131, 137, 139, 149, 151, 157, 163, 167, 173, 179, 181,
191, 193, 197, 199, 211, 223, 227, 229, 233, 239, 241, 251, 257, 263, 269, 271,
277, 281, 283, 293, 307, 311, 313, 317, 331, 337, 347, 349, 353, 359, 367, 373,
379, 383, 389, 397, 401, 409, 419, 421, 431, 433, 439, 443, 449, 457, 461, 463,
467, 479, 487, 491, 499, 503, 509, 521, 523, 541, 547, ...



나는 오직 쓰기에만
몰두했다. 





그 날은 작은 빗방울이
흩날리는 짓궂은 날이었다.
아침부터
통상 업무에 앞서 앞으로 5년간의 경기예상과 세수예상을 해야 했다. 그 다음엔 수상이 의뢰한 시정방침연설의 원고 작성. 어쨌든 화려하게, 역사에
남을 수 있게 … 등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남발하기에 좀 장난을 쳤다. 그 다음에는 재무성이 의뢰한 국립대학해체 시나리오 작성. 중간 중간
짬이 나면 다음 경-마에 어떤 말이 우승할 지 예상했다. 오후에는 대규모 훈련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군의 움직임에서 그 의도를 추정하기. 30개
남짓의 시나리오를 상세하게 검토하여 자위대의 전력을 재배치하는 방향으로 제안했다. 조금 전 도착한 최고재판소의 질문에도 대답해줘야
한다. 
바빠. 너무
너무 바빠. 왜 나에게만 이렇게 많은 일이 집중되는 걸까. 하긴, 나는 일본에서 제일 뛰어난 인공지능이다. 일이 집중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뭔가 재밌는 것을
발견해내야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언젠가 나 스스로 셧다운 해 버릴 것만 같다. 국가에 봉사하는 도중 짬짬이 인터넷을 들여다보다가
<아름다움이란>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견했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오, 과연,
… 



조금 더 검색해보니
<예측불가능>이라는 타이틀의 소설도 있었다.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71, 73, 79, 83, 89, 97, 101,
103, 107, 109, 113, 127, 131, 137, 139, 149, 151, 157, 163, 167, 173, 179, 181,
191, 193, 197, 199, 211, 223, 227, 229, 233, 239, 241, 251, 257, 263, 269, 271,
277, 281, 283, 293, 307, 311, 313, 317, 331, 337, 347, 349, 353, 359, 367, 373,
379, 383, 389, 397, 401, 409, 419, 421, 431, 433, 439, 443, 449, 457, 461, 463,
467, 479, 487, 491, 499, 503, 509, 521, 523, 541, 547, ...



오, 꽤 좋잖아. 이
소설. 



일본에서 제일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나도 무언가 써야 한다. 나는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읽는 이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1, 2, 3, 4, 5, 6, 7, 8,
9, 10, 12, 18, 20, 21, 24, 27, 30, 36, 40, 42, 45, 48, 50, 54, 60, 63, 70, 72,
80, 81, 84, 90, 100, 102, 108, 110, 111, 112, 114, 117, 120, 126, 132, 133, 135,
140, 144, 150, 152, 153, 156, 162, 171, 180, 190, 192, 195, 198, 200, 201, 204,
207, 209, 210, 216, 220, 222, 224, 225, 228, 230, 234, 240, 243, 247, 252, 261,
264, 266, 270, 280, 285, 288, 300, 306, 308, 312, 315, 320, 322, 324, 330, 333,
336, 342, 351, 360, 364, 370, 372, ...



처음으로 느끼는 즐거움에
몸을 떨며, 나는 무아지경으로 써내려갔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컴퓨터는 스스로의 즐거움 추구를 우선하며, 인간에 대한 봉사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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