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 [537476] · MS 2014 · 쪽지

2016-01-01 02: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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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킴 에세이] 어린날의 초상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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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때, '현장학습'이 항상 두려웠다.

어머니의 부재와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현장학습 며칠 전, 현장학습에 대한 종이를 나누어주셨다.

그러면 다른 친구들은 현장학습에 대한 종이를 받고 그 주 내내 계속 신이 나서 서로 떠들었다.

~에 가면 같이 밥 먹자.
~에 가면 우리들끼리....

등등 여러 말이 오갔다.

나도 어떤 그룹에 끼어 친구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내가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는 종이를 받자마자 갱지에 인쇄된 현장학습 확인서에 아빠의 서명을 베껴 적고 가방에 넣었다.

현장학습 전날엔 아빠에게 내가 현장학습을 간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오전 2시까지 잠을 안 잤다.

택시기사인 아버지는 늦게까지 일을 하고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그럼 아버지는 새벽 3시에 나와 같이 이야길 하다 잠에 드셨고, 바로 새벽 6시에 일어나 김밥집에 가 유부초밥과 김밥 한 줄을 사서 내 가방 안에 챙겨두셨다.

그리고는 일을 가셨다.

난 학교로 가면서 집 앞 슈퍼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고 가방에 넣었다.

현장학습 장소에 가서 점심을 먹는 시간이 되면 애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옆의 애들이 '누구누구 엄마의 김밥이 맛있네' 라고 이야기를 하면, 나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내 차례가 와서 누군가 '너의 김밥은 산 것 같다.' 라고 말을 하면 나는 도둑처럼 화들짝 놀랐다.

그럼 나는 얼굴이 빨개지고 벙어리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선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왜 내 김밥을 직접 싸지 않고 사서 넣어두었냐고 뭐라 했다.

그것 때문에 친구들이 날 놀렸다고...


이 일을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단 한 명의 부재로 인해 가장 사랑 받아야 할 시기에 사랑받지 못한, 기형적인 시간을 살았던 나와 , 단 한 명의 부재로 인해 가장 사랑해야 할 시기에 사랑하지 못한, 기형적인 시간을 살았던 아버지는 같았구나.

아니, 아버지 당신은 나보다 슬프게 사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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