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대나무숲 인기글2
게시글 주소: https://image.orbi.kr/0006722137
서울대 대나무숲에서 가져온 인기글이에요.
보신분들도 계시겠지만 너무 좋아서 올려봐요. 글이 많이길지만 읽어보시면 좋아요 .
"학생 서울대학교 다녀요?"
녹두거리 편의점 파라솔에 걸터앉아서 맥주를 마시는데 웬 낯선 아저씨가 와서 물었어요. 아마 제 과잠을 보고 아셨나 봐요.
"네."
"신림동에서 자취하나 봐요?"
"아니요. 통학합니다."
제가 여자였다면 벌써 도망가야 했을 멘트였지만 전 남자여서, 의심쩍지만 그냥 대답했어요.
"어이구, 통학하는데 이 시간에 왜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있어. 힘들어요?"
그래요. 그날따라 좀 마음이 허했어요. 시험도 있고 과제는 많고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많아서 벌려놓느라 이리저리 꼬이고... 인간관계는 갈수록 어렵고 친구들은 하나둘 떠나고. 시끌시끌하던 새내기 시절이 한참 지나가고 나니 남은 대학생활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만 남았나, 싶기도 하더라구요.
그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어서, 녹두에서 약속이 끝나고 이젠 새벽 2시가 가까워 오는데 집에 가기가 너무 싫고 시원한 맥주 한 잔 땡겨서, 비칠비칠 편의점 앞에 외롭게 걸터앉은 참이었거든요. 때마침 누가 말을 걸어주니 의심쩍지만 내심은 반가운 마당에, "힘들어요?" 한 마디에 스르르 마음이 풀렸어요.
"네...힘드네요. 하하.."
"왜, 공부가? 사람이?"
"그냥요. 이것저것...공부든 사람이든 다 힘들죠. 학년 먹을 수록 힘든 그런거.. "
잠깐 기다리라면서 아저씨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비싼 외국맥주랑 안주를 사오셨어요. 먹으라고 하시면서 아저씨가 말했어요.
"학생 관악 02 타본적 있어요?"
"네 당연하죠."
"내가 그거 버스기사 하고 있어요."
아저씨는 지금 관악 02를 실제로 운행중이신 현직 기사님이셨어요. 이제는 낙성대 일대는 눈 감고도 다니신대요.
아저씨는 딸이 하나 있으셨어요. 공부도 엄청 잘해서 서울대학교 입학하는 걸 오래 전부터 꿈꿨대요. 집안이 넉넉질 못하고 아버지가 버스기사라 돈도 많이 못 벌어다 준다고 매번 미안해했는데도 불평 한 번 안하고, 하루 진종일 일하고 집에 녹초가 돼서 떡볶이 순대 사들고 집 들어가면 늦은 시간인데도 늘 공부하고 있었대요.
그렇게나 예쁘고 착한 아저씨 딸이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간지 얼마 안 되고, 하필이면 또 버스 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아저씨는 모든 걸 포기할까도 생각하셨대요. 매일매일 낮밤으로 술만 퍼마셨고 아내분은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셨대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잔뜩 취한 채로 신림동 일대를 비틀비틀 지나가다가, 딸하고 너무 닮은 학생이 서울대 과잠을 입고 친구들이랑 재잘거리면서 지나가더래요. 문득 술이 확 깨면서
'딸내미가 지금 살아 있다면 이제 대학교 입학했겠구나, 아마도 서울대에 들어갔겠지.'
하는 생각이 드셨고 그 길로 다시 버스 운전대를 잡게 되셨대요. 딸이 지금쯤 제 나이쯤 되는 남자친구를 데리고 와서는 집에 자랑했을지도 모른다고, 맥주를 한 모금 꿀꺽 삼키시고는 허허 웃으셨어요.
" 그때부터 버스 타는 학생들을 하나하나 뜯어봐요. 그때 우리 딸 닮은 그 학생도 탔나, 하고.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잠바 뒤에 적힌 말이 뭔지를 몰라. 과에다가 전화를 해보겠어, 뭘 하겠어. 그러니까 처음에는 우리 딸도 아니고, 딸 닮은 사람 하나 찾자고 이거 시작한 셈이에요.
그러다가, 처음에는 안 닮은 사람이면 그냥 넘어가고 남학생들도 넘어가고 그렇게 보다가, 나중 가니까 얘들이 우리 딸 친구 후배 선배겠구나, 싶으니까 얼굴이 하나하나 다 보여요. 어쩜 다 이뻐. 삼삼오오 모여가지고 좋다고 떠드는 것도 예쁘고, 공부하느라 힘들다고 한숨 푹푹 쉬면서 버스에 타도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면 그렇게 또 이뻐. 그렇게 하루하루 하다 보니까 이제 우리 딸도 졸업 다 했겠네. 근데도 아직도 버스 몰아요. 습관이 되고 일이 돼서."
"따님 닮으신 분은 찾으셨어요?"
"아니 결국 못 찾았어. 아마 졸업했을거에요. 그럼 어때. 매년 3천명씩 아들딸이 들어오는데요."
"아"
"서울대 버스기사 몇년 귀 열고 하다 보면, 시험기간이 언젠지도 다 알아요. 유명한 수업은 이름도 외고, 어떤 교수가 얼마나 못 가르치는지도 알 수 있어요. 그럼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는 얼마나 잘 알겠어요.
아무튼간에.. 힘든데 무작정 힘내는 것보다, 힘들면 가끔 이렇게 맥주 먹고 쉬어. 그리고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응원해주고 있다고 생각도 해보고 그래요.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자기 이렇게 생각해주고 있다고 느끼면 얼마나 가슴 따뜻하고 좋아."
힘들죠. 힘든 세상이에요. 취업도 힘들고, 뭐해먹고 살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은 군대 간다 대학원 간다 교환학생을 간다... 하나 둘 떠나고 새내기 때 맘 맞던 친구들도 연락이 슬슬 끊기고.
어떻게 보면 제가 앞서 했던 고민은 아저씨 얘기 들었다고 해결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새내기 시절을 보내고서 남은 대학 생활은, 아니 남은 인생은 정말로 그저 외로움을 참고 견디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외로워도 행복할 수 있어요. 진짜로 내 곁에 누가 있어 주지는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 함께 숨쉬고 스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외로움이 불행으로 바뀌지 않아요. 그리고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이니까, 따뜻하게 안아주고 사랑해줘야겠다고 생각해 보세요. 직접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지 않아도 돼요. 말을 걸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그냥 속으로 응원해주세요.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은 생각보다 정말 많아요. 그 외로움은 우리 모두가 다, 형태만 다르도록 가슴 속에 하나씩 품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남들의 외로움을 보듬어 주는 것처럼, 낯설겠지만 나도 보듬어 주세요.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아침 수업을 드랍하더라도
술 많이 먹고 죽어서 다음 날 숙취로 아무것도 못하더라도
무기력증에 빠져서 하루종일 페이스북만 보고 있더라도
과제를 밀리고 공부를 못해도
사람들에 허덕이다가 진짜 친구는 몇 남지 않더라도
그렇게 처절하도록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외로움과 고독이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기로 해요.
외로움은 불행과 동의어가 아니에요. 모두가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면, 우린 외로워도 행복할 수 있어요.
저는 요즘 다시 헬스를 시작했어요. 살도 빼고 건강도 다시 찾으려구요. 힘들겠지만 이번 학기는 공부도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노려볼까 합니다. 이것저것 맡은 일들도 잘 마무리했고 남은 것도 잘 끝내 볼거에요. 솔직히 여전히 외롭고 힘들어요. 저만 외롭고 힘든건 아니니까요.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함께 외로워서'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찾는 중이에요.
요즘은 일부러 위쪽으로 올라가서, 관악 02를 타고 낙성대에 내려서 통학하곤 해요. 그런데 아직 아저씨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이제 그만두신 걸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인연이라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또 반갑게 마주치겠죠.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요. 서울대 여러분들, 아니 글을 읽는 모든 분들 감기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여러분은 제 이름도 성도 모르시겠지만, 제가 언제나 외로워하는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수능11일 우리모두 힘내요 사랑합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1가능?
-
수학은 미적 선택예정이고요(작수 높3나왔습니다) 사문 생윤을 할지 사문 지학을 할지...
-
추합이 애매해서 일단 공부좀 하려고 하는데 현역 수능 물생 53이면 나대지 말고...
-
날먹 과목 0
물리 화학 ㅋㅋㅋ 꼭하셈 똑같은거 나옴 ㅋㅋ 겹치는거으많음 ㅋㅋ
-
수능에서 경제 쳐보신 분들께 여쭙니다 또래 애들에 비해 경제/금융/시사 상식이 많고...
-
자율형 고등학교라 물화생지1 다 했고, 물화2 까지 했습니다. (생2,지2는 3학년...
-
'사회문화'는 무조건 고정으로 할거고 '경제'는 올해 했고 양적으로 많이 못하긴했음...
-
그냥 30분 동안 두뇌풀가동해서 답 다 맞추는 게 개재밌음 올해는 사만다도 풀어보고...
-
아니 원리들은 다 이해가 가는데 다구해놓고 비율 비교하려니깐 뇌정지옴 부양비가...
-
본인은 지구과학은 ㅈ반고에서 1등급떴어서 지구 많이는 안했고 물리는 걍 손이 안가서...
-
투표좀
-
분석 ㄹㅇ정확한듯 갠적으로 너무저평가되는거 같아서 아쉬운 강사
-
사탐보다 심한거 같네.. 지구과학도 그렇고 물리 2단원 배운거 다까먹었네,, ㅠㅠㅠㅠㅠㅠ
-
하루에 얼만큼해야 적절할까...ㅔ
-
문과출신 n수생인데 스카이 등 상위대학 가려면 사탐 두개 선택할때 둘다 만점받아도 지장있나요?
-
공부 좀만 열심히 하면 50점 그냥 뜰줄 알았는데... 이번수능 44뜸 ㅠ
-
이지영vs박봄
-
안정적으로 1등급이나 만점나오시는분둘 혹은 수능에서만점받아보신분들 탐구 선지...
-
심화는 지엽의 또다른 이름이다 ㄹㅇ
-
수능장에서 탐구 7
시험지겉표지에풀어도되나요? 맨겉에있는거요
-
불안해서 못하겟네...
-
현재 학교에선 법과정치와 세계지리를 배우고 있는데요. 세계지리 선생님이 바뀌셔서...
-
무리입니까? 중학교 때 5급인가 하다가 말았음. 아랍어는 그냥 하기 싫고 ㅋㅋㅋㅋ...
-
이제 재수생이 되는 상큼한 98년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패스 결정을 못하겠어요...
-
생윤 사문 봤다가 망쳐서 바꿀생각인데 좀 난이도있으면서 깔끔하고 표점잘뜨는 그런과목...
-
뭐가 나을까요??? 독재생이라 시간은 많아영
-
문제 뿐만아니라 개념까지 모조리 다봐야되나요? 시간이 부족할거같아서... 근데 또...
-
지1 중하위권이 많고 개념 자체도 지엽, 천체 빼면 다 쉬워서 백분위 표점 빵빵...
-
고3때는 화학1지구과학1을 했었는데요;제 상태를 말씀드리자면요. 물리1- 고2부터...
-
대구무료과외나 공부 상담 필요하신분~ 읽어주세요!!! (더 모집하기로 했어요~) 4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와 반수끝에 대학교 합격만을...
-
제가 원래 학교에서는 이과인데 수학성적도 좋지않고 가고싶은과가 문과에 있어서 문과로...
-
재수하기로 결심했는데요 작년에는 생윤 동아시아사였는데 생윤 동사 둘다 모의고사때는...
-
문과에 그런 위상을 가진 과목이 있을까요?
-
재수할 학생입니다현역때 화1생2 4,5등급.. 진짜 열심히했는데 오르지를 않네요.....
-
전국 대학교 명단 14
만든 분은 모 포털의 재미로 수능을 본다는 전설의 8수생 분이라고 합니다....
-
방금 대구진협에서 공개했다는 대구 지역 과목별 만점자 비율을 봤는데요 한국사...
-
그러니까 14년 11월에 치뤄진 15학년도 수능 국어b 난이도 어땠나요 ???
-
작년 수능 영어 25
작년 수능을 안봐서 모르는데 들어보니 완전 물수능영어였다더군요 어느정도 길래...
-
탐구 0
다들 탐구과목 다끝냄??
-
문과는 한국사를 피하고서는 서울대를 갈 방법이 없음. 이과는 물2화2를 피할 수...
-
올해꺼 왜케쉽죠? 아니 생각보다 너무쉬운것 같은데요? 올인원 실전편 풀다가 너무...
-
왜 탐구영역 1과목당 30분인거죠? 2과목60분하면 안되요? 3
2과목 60분이면 레알 탐구 휩쓰는데 ㅡㅡ지투개꿀ㅋ
-
생1, 화2 둘다 현재개념 정리 다했고,수능특강 다 풀었고올인원(기출)도 다 푼...
-
이과 97 89 83 39 45 화1지1 정시로 어디갈수있나요 0
후 영어가 왜 이모양인지....
-
이과생인데 문과 수능 준비하는 고삼인데요 그동안 사탐은 기출 풀어왔었는데 오르비...
-
사교육을 줄이는 방법은 탐구에 변별력을 두면 됩니다 9
탐구과목을 4과목 의무적으로 선택하게 하고 4과목 모두 반영하게 하고 국영수는 쉽게...
-
제가 세지한지를합니다 재수중인데 세지눈 이번년도에 시작했고 완강후 외우고 있습니다...
-
지금 화1생2하는데요생1이 자신있긴한데...혹시나 수능괜찮게 봐서 서울대 갈...
아 이 글 진짜...최고였는데
진짜 10번봐도 볼때마다 울컥하는 글이에요 ㅠㅠㅠ
글 진짜 멋지네요..
짱짱
아눈물ㅜㅠ
ㅠㅠ너무슬프조
으앙 ㅜㅜ
흙흙 ㅠㅠ
엄마는 수저가 아냐 이후로 제일 괜찮은글인듯..
엄마는 수저가 아냐 ㄹㅇ 갑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고독은 좋은것
외로움은 나쁜것
인정
굳굳
근데서울대
서울대는 기사도 클라스있네
대학 들어가도 저렇게 힘드나요...
음...인생이란게...@
옛날에 대학시절 고생은 낭만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거 ㄹㅇ 감동...
뭔가.. 한석원쌤이 눈앞에 그려지는것 같다
아 개웃겨 ㅋㅋㅋ
역시 서울대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