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서 깨어났는데 자궁 속에 실뱀이 - 도시 괴담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 10대 수험생 위주인 사이트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희박한 이야기'가 어찌 확산되는가를 저에게 생각하게 했기에 적습니다.
언론학이나 정치학 사회학 등에 관심이 있다면, 화장실 등에서 시간 될 때 한 번 읽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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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 아해(20대 후반)로부터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해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아해와 아주 친한 친구(동어반복이죠. ‘친할 친’자를 쓰는 게 친구인데, 여기에 ‘아주 친한’이라는 수식구를 다시 붙였으니)의 친구의 친구(여성. 이하 ‘A’) 이야기이다. A는 성적으로 조금 자유롭다. 해서 원 나잇도 그리 부담 없이 했다, 어느 날 클럽에 가서 어느 남자와 술을 마셨는데, 깨어나 보니 모텔이었다. 옷은 벗겨진 채였고. 탁자에는 100만 원이 놓여 있었다. A는 ‘나중에 돌려주는 한이 있을지라도’ 일단 돈을 들고 나왔다. 한데, 다음 날부터 배가 너무 아팠다. 단순한 복통인 줄 알고 병원에 갔지만 차도가 없었다. 큰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조사해보니, 자궁 속에 실뱀이 들어있었다. A는 결국 자궁을 들어냈다.
듣자마자 바로 말했습니다.
-CCTV에 그 남자 놈이 촬영됐을 텐데 바로 신고해야지.(나)
-여자라서 수치스러운가 봐.(아해. 이하 이야기는 순서대로 진행)
-아니, 뭐가 수치스러워. 결혼하지 않은 이가 상호 합의 아래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는 게 불법이야? 그런 놈을 가만히 두면 제2 제3의 그런 범죄가 또 벌어질 터인데? 게다가 여자의 만취가 잘못은 아니잖아? ‘나는 원 나잇을 즐기는 사람이라서, 내가 나이트클럽에서 만취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사람들이 바로 나를 정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하고 A가 지레 걱정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야. 예전에 어느 섬마을에서 마을 주민 몇이 여교사에게 술을 왕창 먹인 뒤 돌아가면서 성폭행했던 사건 기억나? 당시 여교사가 씻지도 않고 바로 경찰서에 가서 신고해서 사건 전모가 밝혀졌지? 그 여교사가 정말 현명한 것이야. 여자가 만취한 것 자체가 무슨 잘못이야?
-나도 아부지 말에 동의하는데, 여자들은 A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 같아.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정말 세상에 사이코가 많아” 했습니다.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요즘 여성이 이런 일을 당하고도 수치심 때문에 신고를 않는다? 저라면, 최소한 합의금이라도 왕창 받아내려고 기를 쓰고 신고합니다.
또한, 저런 일을 벌이고 100만 원을 모텔방에 놓고 간 정도라면, ‘초범’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신고했을 겁니다. 어딘가 뉴스에 나왔을 것이라는 이야기이죠. 바로 네이버와 구글을 검색했습니다.
2003년 5월에 ‘이야기 구조’가 너무도 비슷한 뉴스가 당시 언론에도 이미 보도가 됐다더군요.
https://www.bcpark.net/bbs/150830?num=150830
(정병철 기자 님의 글을 어느 분이 복사해서 올린 것인데, 정 기자 님의 이메일 주소를 보면 ‘hot.co.kr’이라고 적혀 있죠? 당시 ‘굿데이’라는 스포츠신문의 주소였다네요. 경향신문이 대주주로 있었다고 하고요.)
당시도 이미 근거 없는 도시 괴담일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됐습니다.
제 아해의 ‘아주 친한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수학적 불가능’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가 너무도 유사하다는 점 등 맥락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근거 없는 도시 괴담’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미 20여 년 전에 유통됐던.
아해에게도 이 기사를 보여주니, 아해 역시 ‘에이...’ 하면서 웃더군요.
그럼에도 들었던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거짓 이야기’(혹은 가짜 뉴스 등)의 유통은 참으로 막기가 힘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3류였지만, ‘사람의 말과 글은, 특히 이해 관계가 걸린 말과 글은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보는’ 기자(사람들이 기자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귀하의 말과 글을 의심부터 하는 사람을 귀하는 좋아할 수 있나요? 반면, 사람 말을 무조건 믿고 썼다가는 오보를 남발하는 ‘기레기’가 됩니다. 기자라는 직업, 칭찬받기가 참 어렵습니다)를 했으니 이런 이야기의 ‘사실 관계’를 파악하려고 하지, 과연 몇 사람이나 이런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파악하려고 할까요?
구글과 네이버를 찾아보면, 이 이야기 구조를 담은 글이 단 두 편 실려있을 뿐입니다. 만약 그 두 편의 글이 구글과 네이버에 없었다면, 저 역시 이 이야기를 ‘기본적으로는’ 믿었을 겁니다. 제 아해의 아주 친한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이야기라는데 믿지 않을 도리가 있나요?
만약 그럴듯한 이야기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파될 때, 그 사실 여부는 과연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자신의 이해 관계’(그것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에 따라 복수의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마구 퍼뜨린다면? 예전에는 기본적으로 정보든 이야기든 사람과 사람의 ‘직접 만남’을 통해서만 전파되거나, 백번 양보해도 ‘거대 미디어’를 통해서만 전파됐는데, 이제는 소셜 미디어라는 ‘초거대 확성기’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마구잡이로 퍼뜨릴 수도 있으니.
‘원 나잇 뒤 자궁에 실뱀이 있었다’는 이야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쩌면 우리의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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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힘있는 일부 미디어에 의해서만 정보가 만들어지고 전파되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는 민주적으로도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만큼 거짓된 정보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속고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드니 양날의 검이네요..
예, 동의합니다. 소위 '거대 미디어'에 속해있던 저 같은 사람들이 요즘 '언론 현실'에 대해 갖는 아쉬움은 기실 자신들의 기득권이 점차 사라져가는 데 대한 아쉬움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묻어나왔을 수도 있고요. 귀하의 지적이 그래서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 아픈' 것이고요. 지적, 감사합니다.
요약가능한가요
저는 AI의 발달으로 가짜뉴스가 더 퍼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예전에 어떤 사람이 트럼프가 체포되는 장면을 Ai를
이용해 만든 걸 봤는데(물론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구요)
와…물론 그게 허구라는 걸 알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색한 점이 군데군데 보이긴 했지만, 그냥 쓱 훑고 지나가면 깜빡 속을 정도로 정교하더라구요
젊은 층은 물론이거니와, 노인분들은 더 속기 쉽겠다 싶었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새로운 걸 배우기 쉽지 않고 경로의존성이 강해진다던데, 그나마 젊은 저도 요즘 변화하는 세상에 가끔은 따라가기 벅찰 때가 있거든요
70년대, 80년대에 청춘을 보내신 어르신들은 오죽하시겠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어르신들이 유권자의 대다수가 되면 나라가 변하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네요
아하, A.I.도 있군요. 훨씬 플롯을 정교하게 짤 수 있는.
예, 나이가 들면 사람이 점점 굳어갑니다. 그게 저에게도 보이고요. 때론 무섭기까지 합니다.
참, 새해 복 왕창 따따블로 받으소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ㅎ
이런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흥미로우면서도 조금 씁쓸한 것 같습니다
글을 되게 읽기 좋게 쓰시는 것 같네요
저 역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항상 평안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