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수능 국어에 등장한 유한준을 아시나요 - ‘아는 만큼 보인다’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https://s3.orbi.kr/data/file/united/4f24cd903f324ba6ac24424fda2e8f61.jpg)
어제(23년 11월 16일) 치른 수능 국어에서 극악한 지문 하나가 수험생들의 애를 먹였습니다. 조선 후기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의 ‘잊음을 논함’(망해 忘解)이라는 글입니다.
수능 지문에 등장한 유한준의 망해 첫 단락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나는 이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잊는 것이 병이라고 생각하느냐? 잊는 것은 병이 아니다. 너는 잊지 않기를 바라느냐? 잊지 않는 것이 병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잊지 않는 것이 병이 되고, 잊는 것이 도리어 병이 아니라는 말은 무슨 근거로 할까? 잊어도 좋을 것을 잊지 못하는 데서 연유한다. 잊어도 좋을 것을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잊는 것이 병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는 사람에게는 잊는 것이 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이 옳을까?”
일부 수험생들은 ‘이런 말장난 같은 문장으로 문학 해독 능력을 판단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어느 수험생은 ‘글쓴이가 중2병에 걸린 게 아니냐’고 하더군요.
유구무언입니다.
수능을 주관하는 교육과정평가원과 출제자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 아닌 것은 아니다’ 라는 식의, 현실에서는 별로 쓰이지도 않을 문투를 반복하는 이런 글에서 진절머리가 난다는 학생들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솔직히, 저 역시 이런 것을 시험으로 풀어내는 게 과연 문학 해독 능력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지문 풀이용 기계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각설하고...
많은 이들이 글쓴이인 유한준이라는 인물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으신 듯합니다. 유한준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그럼, 이런 식으로 풀어보죠.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위용을 떨치는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등장했던 다음 문장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소위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국민 격언을 만든 문장입니다. 예술이든 그 어떤 활동이든, 사랑과 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문장입니다.
한데, 이 문장의 ‘원작자’가 바로 유한준입니다.
유한준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서화를 모은 ‘석농화원’(石農畫苑)이라는 화집에서 발문을 씁니다. 거기서 유한준은 이렇게 말합니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 而非徒畜也
이 문장을 현대문으로 번역하면 이 정도가 될 겁니다.
알게 되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심 어린 마음으로 보고자 한다. 보고 있노라면 그것과 함께 하고자(畜) 한다. 이리되면 그저 헛되이 모으는 것이 아닌 경지에 이른다.
여기 등장하는,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진심으로 보고 싶고, 갖고 싶어한다’는 문장을, 유홍준 선생이 ‘사랑하면 알게 되고...’로 바꾼 것이지요. 그 유명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문장의 남상은 사실 유한준에게 있는 것이지요. (유홍준 선생은 유한준의 후손입니다. 기계 유(兪)씨이거든요.)
유한준은 석농화원 발문에서, 그간 많은 재산을 들여 그림을 모은 석농 김광국(石農 金光國 1727~1797)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 것입니다. 석농은, 부유한 의관 가계에서 태어나 그 역시 의관으로 일하며 평생 그림을 수집했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아는, 막말로 ‘국민문장’을 탄생시킨 이가 유한준인데, 24 수능 국어 지문으로 바로 ‘중2병’이 돼 버리니, 뭐랄까요, 그냥 할 말이 없어서 이렇게 넋두리처럼 몇 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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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아는 만큼 보이는’ 지문이네요
하여튼, 답답은 합니다. 이런 비상용적 문장을 빠르게 읽고 문학 작품에 대해 논하는 능력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요. 참 살기 힘든 나라...
허나, 읽으면서 참 글이 교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망각하지 말아야 하는 도리라는 게 있는데…
그렇죠. 한데 수능을 푸시면서 그런 생각까지...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저라면 급해서 아무 다른 생각이 없었을 겁니다.
다시 읽어보면 글 자체의 내용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지문을 읽고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수능엔... 글쎄요
저도 수능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글이 진정한 문학사랑을 막는다고 봅니다.
이런 글을 수험용으로 읽으면 무슨 감동이 있을까요? 답답합니다.
중2병이라고 보지 않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문장이 저분 꺼였다는 걸 모르지 않지는 않았어서 다시 보게 되네요
허걱..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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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립인거 아시죠..?하하. 오죽하면 이런 댓글을 다셨으려고요. 저도 답답하네요.
사실, 읽어보면 참 좋은 말이다…라는 생각은 합니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누렸다’ 라는, 어느 신문에서의 이완용의 죽음에 대한 평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근데 저걸 수능에..음…
헤겔도 읽어보면 좋은 말이죠…
하하... 유구무언입니다. 정말로. 참 좋은 글이기는 한데 짧은 시간에 저런 '의고적 문투'의 글을 풀면서 문학 능력을 평가하려니... 다시금 유구무언입니다.
그냥 나쁜거 좋은거 두게로 이분만 하면 나름대로 쉽게 풀렸던 것 같은데
아, 그렇게 푸는 것도 방법이었군요.
”망해“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