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60편 - 기후와 창의성
오랫만에 전쟁사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소재가 떨어져서 참 막막하고 한동안 전쟁사 이야기를 연재하지 못했는데, 최근에 <총균쇠>와 관련해서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칼럼을 기고하게 됩니다.
한국은 대표적으로 4계절이 뚜렷한 나라입니다. 보통 같은 위도에 존재하는 국가들끼리는 같은 기후를 공유하죠. 당장 우리나라를 생각해봐도, 북쪽으로 갈수록 좀 더 추워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더 더워진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중국은 워낙 커서 우리나라랑 위도가 비슷한 쪽도 있고, 우리의 최북단보다 높은 곳도, 최남단보다 낮은 곳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제주도, 부산은 상당히 남쪽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눈을 보기가 상당히 어렵고, 실제로 경상북도의 구미만 하더라도 눈이 조금만 와도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처음 겪는 일이기에 당황을 많이 합니다. 부산에서도 눈이 조금 온 일이 있었는데, 서울 기준으로 정말 조금 왔지만 제설차량이 없어서 급하게 다른 지방에서 제설차량을 비려온 일도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북극에 가까워질수록 더 추워지고, 적도에 가까워질수록 더 더워집니다. 한국은 참 적절한 위도에 위치해있기에 한 국가 내에서 4계절이 뚜렷합니다.
https://m.blog.naver.com/chammaja1/100194907067
그래서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해보곤 했었어요. 우리가 만약 위도가 거의 비슷한 나라에 살았다면 굳이 겨울에는 껴입고 여름에는 반팔티나 시원한 옷을 준비한다고 의류나 가스비, 전기세를 더 부담할 일이 없었겠죠. 4계절이 뚜렷한 것은 과연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불리한가? 유리한가? 문화적으로 더 좋은가? 더 나쁜가? 라는 상상을 하곤 했었습니다.
이에 대한 제 결론은 '뚜렷한 4계절은 그 지역 사람들의 창의성이나 산업의 발전에 영향을 매우 크게 준다' 였습니다.
우선 이에 대한 근거로, 서울대 대출 도서 1위를 항상 찍는 <총균쇠>에 대한 영상을 예시로 들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jlwsZ-Y0iA&ab_channel=EBS
두꺼운 책을 다 읽기 힘들다면 최소한 이 30분짜리 영상이라도 시청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우선 '열대성 기후'를 가진 위도에 위치하는 국가들은 세계적으로 빈국인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보통 열대를 생각한다면, 울창한 녹색 숲에 바나나나 코코넛이 자연스럽게 주렁주렁 열려 있는 휴양지를 생각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미 이 생각 속에서 열대성 기후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열대성 기후를 '휴양지'로 여길 확률이 높지, 쌀과 농작물이 잘 자라는 곡창 지대나 산업화가 되어 우수한 공장들이 많이 설립된 모습을 상상하지 않습니다.
열대성 기후에 위치한 국가들은 주로 빈곤할 확률이 높고, 그보다 더 위의 위도이거나 더욱 아래의 위도에 위치한 온대 지역의 국가들은 부국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말라리아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하여 평생동안 환자로 지내다가 죽는 시간이 건강한 시간보다도 더 길다고 합니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산업이 쉽게 발전하겠습니까?
열대 우림은 녹색 사막이라고 불릴 정도로 농업 생산성이 좋지 못합니다. 제가 예전부터 소개했지만 세계적인 강국들은 3차 산업이 발전한 것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안정적인 1,2차 산업을 가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미국은 텍사스 주 하나가 유럽 거의 전체를 덮을 정도로 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산되는 옥수수와 각종 식량은 세계를 먹여 살립니다.
한국을 기준으로 동남아나 필리핀, 대만 등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거긴 항상 무척 덥습니다.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 홍콩에 비해서 비교적 아직도 덜 발전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이런 것은 결코 그 나라 국민들이 무식해서도 아니고, 운이 나빠서도 아닙니다. 열대 지방은 상대적으로 산업이 발전하고 많은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인구가 성장하고 잉여 식량이 축적되어 자본이 쌓이기에 불리한 조건입니다.
특히 전염병도 큰 문제입니다. 한국도 여름철이 되면 모기가 극성이어서 매우 큰 불편을 겪는데, 열대 지방의 경우 모기는 단순히 가렵고 귀찮은 문제가 아닌 생존에 걸린 문제로 바뀝니다. 바로 모기를 매개하여 퍼지는 전염병 '말라리아'입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필리핀을 예시로 들겠습니다. 1939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순식간에 일본군이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에 상륙합니다. 필리핀은 당장 일본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일본군의 보급은 수월했으며, 특히 필리핀이 공격받을 경우 당장 달려와서 일본군을 격퇴시켜야 할 막중한 역할을 지닌 태평양 함대는 진주만 기습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린 상태였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당시 필리핀을 사수하던 미군은 상당히 열악한 상태였으며, 전쟁 준비가 덜 되었고 특히 식량과 말라리아용 각종 의약품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말라리아는 치사율이 높은 매우 위험한 전염병으로 모기를 통해 감염되며, 필리핀처럼 덥고 습한 지역에서 잘 자랍니다. 마치 한국에서 여름에 모기가 창궐하듯이, 모기가 좋아하는 지방에서는 인간이 생존하기 힘듭니다.
필리핀을 두고 미군과 일본군이 격전을 벌이는 가운데, '말라리아'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내용입니다. 말라리아는 전투 병력을 극심하게 피로하고 손상시키는 무서운 전염병이었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imkcs0425&logNo=221126360872&referrerCode=0&searchKeyword=%EB%A7%90%EB%9D%BC%EB%A6%AC%EC%95%84%20%ED%95%84%EB%A6%AC%ED%95%80
말라리아 외에도 '일본 뇌염 모기'를 예시로 들어보자면, 비록 제가 말라리아보다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일본도 한국보다 좀 더 남쪽의 더운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치명적인 뇌염이 모기를 매개체로 하여 퍼진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유추가 가능합니다. 갑자기 모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모기는 인간보다도 인간을 많이 죽이는 동물로 알려져있는 해충입니다.
때문에 이처럼 한국이 너무 덥기만 한 기후에 위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이 더 남쪽에 있었다면, 우리는 귀찮음이 아닌 생존을 위해 모기약을 항상 틀고 다녀야 했을 지도 모르겠죠.
한국의 기후는 특히 재미있어서, 여름은 아프리카보다도 덥고 겨울은 시베리아보다도 춥기로 유명합니다. 실제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포항공대로 유학 온 학생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아프리카는 한국과 달리 습도가 낮기에 그늘 밑에만 들어가도 시원하다고 합니다. 미국의 텍사스 같은 곳은 사막이 많고 태양열이 강하기에 여름에 지표면 온도가 60도를 우습게 찍는데, 그런 곳에서 나고 자란 운동 선수도 대구의 한 여름에서 훈련을 하면 실려 나갑니다.(습도가 다르잖아 습도가!)
한국의 체감 온도는 시베리아보다도 더 낮은데, 그 이유는 바람이 심하게 더 불기 때문입니다. 온도 자체는 시베리아가 더 낮은 경우가 많지만, 거기에 바람이 불지 않기에 체감 온도가 그렇게 낮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온도와 더불어 바람이 쌩쌩 불기 때문에 체감 온도는 시베리아의 그것보다 훨씬 더 낮아집니다.
이는 전쟁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625가 터진 당시 미군이 대량으로 한국에 와서 부산에서 격전을 치를 때의 사진을 보면, 옷 윗통을 다 깐 사진이 많이 보입니다. 아~ 한국은 필리핀처럼 열대 기후구나! 라고 생각하기에 쉽죠. 그러나 반대로 625 전쟁 첫 해의 말이 되어, 중공군과 싸우기 직전에 북한 지역에서는 미군이 그냥 얼어 죽어 나갑니다.
장진호 전투의 미군의 모습. 실제로 미군의 증언에 따르면 '시베리아보다도 더 추웠다' 라고 합니다
https://ppss.kr/archives/35076
한반도처럼 여름에 무진장 덥고 겨울에는 무진장 춥고 산악 지형이 많아서 인간의 극한을 경험시키기 좋은 (헬)한반도에서 떠나면 대체 어디서 4계절 훈련을 하나 라는 미군 장군의 한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040076#home
이처럼 기후는 인간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칩니다. 너무 더운 곳은 상대적으로 인간이 살기 힘들고, 그에 따라 국가가 발전하기도 힘듭니다. 인간을 위협하는 모기와 낮은 토지 생산량을 산업을 발전시킬 여유를 주지 못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4계절이 뚜렷하고 다양한 기후를 겪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큰 지혜를 안겨다 준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우리보다 더 남쪽에 사는 대만은 반팔티가 항상 당연하고, 일본이나 한국에 겨울을 체험하기 위해 놀러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대만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일본이나 한국에서 고장을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겨울이라고 합니다. 대만은 더운 기후이기에 그 무더위에 맞는 수준으로 물건을 만드는데, 이런 물건들이 한국에 와서 혹독한 겨울을 겪고 나면 온도의 차이로 인하여 팽창하여 얼어서 깨지거나 오작동한다고 합니다.
한 가지 예시로, 한국의 방산산업이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이유를 저는 기후라고 추정합니다. 계속 말했듯이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하죠. 때문에 한국군은 다양한 장비로 무장해야 하며, 우리가 쓰는 중장비 또한 다양한 기후에 적응해야 합니다. 북한군이랑 꼭 여름에만 싸운다는 보장이 없기에, 전차나 자주포를 만들 때도 엄청나게 더운 것도 겪어야 하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추운 겨울에도 잘 작동해야 합니다. 한국이라는 지리 자체는 그렇게 장비를 극한의 환경에서 잘 작동시킬 수 있게끔 하는 좋은 시험장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https://v.daum.net/v/20161124161947974?f=p
https://www.youtube.com/watch?v=fHlwohlrNGE&ab_channel=%EC%97%B0%ED%95%A9%EB%89%B4%EC%8A%A4Yonhapnews
대표적인 한국산 무기 K-9 자주포는 노르웨이의 설원을 달리기도 하며, 동시에 더운 아랍 에미리트나 이집트의 사막도 견뎌야 합니다
기후는 의외로 산업에 큰 영향을 줍니다. 일본은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계속 생산하기 어렵습니다. 이유가 좀 웃긴데 뭔지 상상이 갑니까? 바로 지진 때문입니다. 모든 전자기기에 떨림, 진동은 좋지 못합니다.
실제로 미세먼지 또한 반도체 공정에 영향을 준다고 하며, 어쩌면 나중에는 미세먼지로부터 청정한 한국의 겨울에서만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90307/94435079/1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기후는 인간의 창의성과 생각과 더불어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기후를 겪으면서 우리는 각 기후에 맞는 옷과 생활, 다양한 계절별 음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것들 또한 우리의 창의성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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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비 상>
https://docs.orbi.kr/docs/7325/
<수국비 하>
https://docs.orbi.kr/docs/7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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