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에서 언매 고난도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안녕하세요.
실전적인 언매 칼럼은 처음인 거 같은데, 어떤 분께서 올리신 자작 문제를 보고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가 생각나 글을 씁니다.
언매가 다소 까다롭게 나와도 잘 안 틀리는 편인데, 학생들이 어려워 할 만한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문법이 다소 어려웠던 21수능과 22수능 모두 현장에서 문법/언매 문제를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들어볼 만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의 내용에 공감하신다면 아마 언어뿐만 아니라 매체에서도 함정 선지들을 잘 가려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수능 언매의 핵심은 '그럴 듯해보이는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개념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고, 그래야 정직하게 물어보는 고난도 문제도 빠르게 풀 수 있습니다.) 낚시라는 게 당연히 문학에도, 비문학에도 존재하지만, 상대적으로 같은 내용을 매년 물어보는 문법 문제 특성상 낚시가 조금 더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평가원이 이런 낚시만을 하기 위해서 문법 문제를 낸다면 소위 말하는 '사설틱하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사실 조금 바꿔 말하자면 평가원은 해당 개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를 물었을 뿐인데 그냥 우리가 낚시를 셀프로 당해버린 느낌입니다.
어찌 됐든 수험생 입장에서 분석했을 때는, 교과 과정 내에서 물어볼 수 있는 개념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같은 주제를 살짝만 바꿔서 자칫 잘못 생각하면 틀리도록 '매력적인 오답 선지'를 굉장히 많이 만드는 느낌이죠. (매력적인 오답은 문학/비문학에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문제도 출제해보고 오랜 시간 생각해본 뒤에 얻은 깨달음은,
"문법은 어쨌든 '법칙'이기 때문에 진술이 명확해야만 한다." 였습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드리면, "여기서는 대충 이렇겠지~"라는 어림짐작이 오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방금 말 자체를 문학이나 비문학에 가져다 놓으면 '나만의 말'로 바꿔 이해하는 것이 되고,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만났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사고 방식입니다.
그런데 문법에서 저렇게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식으로 문제를 풀면, 쉬운 문제에서는 상관없지만 까다로운 문제에서 막혀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공부의 갈피를 잡기 어려우실 듯해서, 예시를 갖고 와서 설명해보겠습니다.
21학년도 수능 14번 문제입니다.
제가 문학에서 언급했던 평가원 낚시 코드를 굳이 찾아보자면,
"기상청에서 비가 온다고 말한 걸 문장으로 썼으니 내용 전달해주는 거잖아. 인용 표현이네."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인용절로 활용되는 것에는 간접 인용과 직접 인용이 있으며, 이를 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블 코테이션)을 쓰고 그 뒤에 '~라고'를 붙이거나, 하나의 절을 쓰고 그 뒤에 '~고'를 붙이는 것뿐입니다.
저 문장은 관형절이지만, 관형절인 것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라고 아니면 ~고가 와야 하는데 ~다는? 이건 인용절은 아니네."와 같은 사고 과정을 거쳐 정답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인용절에 '~라고'와 '~고'가 쓰인다는 것은 하나의 법칙입니다. 무조건 저 둘 아니면 안 된다는 약속이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거 인용 표현인데?"와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죠. 이게 바로 '대충 그럴 거 같다는 어림짐작'에 해당합니다.
위의 설명은 정말 기본적인 문법만을 암기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니, 조금만 더 부연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풀 때는 보자마자 "이거 한 문장으로 바꿔 보니까 말도 안 되는 문장이 나오는 걸 보니 동격 관형절인데?"라는 생각을 했고 답을 골랐습니다.
동격 관형절은 수식하는 어구를 문장으로 바꿨을 때 느낌이 굉장히 이상합니다. 예시를 바꿔 보면
"예보는 내일은 따뜻하지만 비가 온다."가 되는데 당연히 비문(非文)입니다. 동격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사실상 같은 말이기에 저런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거겠죠.
그에 비해 관계 관형절은 수식하는 어구를 문장으로 바꿨을 때 전혀 이상한 게 없습니다.
'문항 퀄리티가 높은 지인선 N제'라는 어구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는 '지인선 N제는 문항 퀄리티가 높다.'라는 문장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습니다.
(과외 준비하느라 지인선 N제를 풀어서 갑자기 생각났네요. 지인선 선생님 파이팅)
사실 첫 설명이나 보충 설명이나 똑같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문학 / 비문학에서 강조했던 '정답 특정의 원리'처럼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죠. 분명 읽어 보면 관형절인 게 보이지만 선지를 먼저 읽게 되면 "인용절이라고? 그런가..?"라는 생각이 한 번은 들 만합니다. 저 문제가 오답률이 높았다는 것은 상위권 학생들도 순간적으로 헷갈릴 만했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위에서 말한 대로, 어차피 동격 관형절이니까 인용절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로 체크한다면 애초에 헷갈릴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 문제를 풀었던 학생들은 종종 쉬운데 오답률이 왜 높은지 모르겠다는 망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 설명이면 아마 쉬웠다는 입장도 나름 이해가 가고, 어려웠다는 입장도 이해가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보겠습니다.
22 수능 41번 문제입니다.
매체 파트에서 묻는 문법 문제죠.
이것도 평가원 낚시 코드를 찾아보자면,
"사전등록 정보가 앞에 나오고 저장한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주술 대응 관계 적절하네. 주어가 맞구나."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런데 주술 대응 관계를 정확하게 짚는다면, 사전 등록 정보는 저장'되고' 있다고 해야 적절할 겁니다. "앞 말 체언 주고 뒷 말 용언 줬으니 대충 주어 술어 관계 아니야?"라는 말을 속으로 곱씹어 보시면 '그럴 듯해 보이는 느낌'이 뭔지 조금 더 체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읽어보니까, 사전 등록 정보'는' -> 사전 등록 정보'를' 과 같이 바꾸면
사전 등록 정보를 암호화 과정을 거쳐 저장하고 있습니다. 가 되겠죠.
그럼 누가 저장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 테고, 주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경우에는 생략하기도 한다라는 생각이 떠올랐으면 주어가 따로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생략된 주어가 정확히 무엇일지 실전에서 감이 잡히지 않았더라도, 해당 단어가 주어가 아닌 목적어라는 점만 짚으면 그만이죠
아니 근데 이걸 현장에서 어떻게 바꾸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으니 이것도 조금 더 설명해보겠습니다.
'보조사 낚시'는 예전에도 다뤄진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보조사는 격 조사 자리를 바꿔서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늘 낚이기 쉬운 파트입니다.
그걸 알고 있었다면 "저게 주어라면 주격 조사를 써도 말이 되어야 하는데, 사전 등록 정보가 암호화 과정을 거쳐 저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뭐 활유법도 아니고."라는 생각과 함께 걸러낼 수 있는 선지였습니다.
이런 것들에 이름을 붙여서 "보조사가 나오면 격 조사로 바꿔 보기!"라는 스킬이 탄생할 수도 있겠지만, 수학과 마찬가지로 이런 개념을 다루는 분야는 스킬이 언제나 정공법에 기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이 스킬이지 이름을 붙여서 외울 정도의 이야기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두 가지 예시를 통해 설명드려 봤는데, 뭔가 공감되는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6월 모의고사가 한 달쯤 남았습니다. 모의고사는 점검용일 뿐이라고, 평소 하던 공부를 그대로 하시는 게 맞다고 늘 말씀드리지만, 그럼에도 다들 좋은 결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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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매에서 사설틱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고 봅니다.
23수능 언매 37번 문제를 보면 그 정답 논리가 '모두 고르라 그랬는데 하나 빠졌잖아.'였습니다. 얼른 봐도 이런 게 정답 논리이면 안 될 거 같아보지만..
그거보다도 제가 작년에 모의고사를 대부분 풀어보고 리뷰도 남겼는데 그릿 모의고사에 저 내용과 완전히 똑같은 논리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입시 사이트에서 수험생들의 반응도 사설틱하다 가 대부분이었는데 수능에 나와버렸죠..
그래서 솔직히 언매는 사설틱하든 말든 그냥 다 알아야 한다는 쪽입니다. 글에도 나와 있지만 엄청 많이 냈던 개념을 반복해서 내다 보니 점점 뭔가.. 그렇게 되어가는 느낌이 아닐까 싶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지인선 샤라웃 ㄷ
그때는 이렇게 대단하신 분인 줄도 모르고 무료로 풀기에는 너무 미안할 정도의 고퀄이다라는 생각 밖에 없었는데
치킨에 어울리지 않는 그냥 월클이셨어요..
'-다는'을 갖고 문제를 재밌게 낼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항상 '-다는'이 '-다고 하는'인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인용절을 안은 관형절을 안은 문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용하면...
재밌게 = 수험생들은 다 틀리게 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ㅋㅋㅋㅋㅋㅠ
아래문제 풀었을때 를을로 고쳐서풀었는데 뭔가 를을이 같이쓰이면 이상한느낌들어서 왜이러지 했던기억이..
와.. 확실히 도움이 된 언매 칼럼이네요. 진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 혹시나 추가적으로 질문거리가 하나 있는데
혹시 4시간을 집중을 하시면서 중간에 잡생각 겹친적이 있으셨나요 ?? 요즘 그것땜에 너무 힘드네요 ㅠㅠ
+ 항상 도움 많이 받고있습니다. 칼럼 쓰시는 분 중에 이렇게 실전적으로 잘 쓰시는 분 못봤는데 글을 너무 잘 쓰시네요 ! 오르비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 ^^7 꾸벅
잡생각 겹치면 일단 무조건 펜을 움직여야 한다가 제 원칙이었던 거 같아요
저라고 뭐 맨날 풀집중이 가능했던 것도 아닐 텐데
일단 책상에 앉으면 공부를 시작하게 되고, 일단 펜을 움직이면 뭐라도 쓰게 된다 라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하 ㅠㅠ 귀한말씀 감사드립니다
꼭 실천해서 저도 cogito 님처럼 내년에는 뱃지 달고 다닐께요 감사합니다 !!
작년에는 낚시 선지 없었죠?
기억상 다 정직 굵직한 문제들이었던 것 같은데..
형태소 단위까지 분석 이것도 뭐 이감 등에서 훨씬 더 어렵게 다루던 내용이라 최상위권에게는 쉽게 느껴졌을만도 했는데, 다만 제시 방식 때문에 언매를 처음 시작으로 푸는 수험생한테는 충분히 무겁게 다가왔을 거 같아요.
그거 말고도 첫 댓에 제가 쓴, 37번 논리 자체가 "설마 이게 정답 논리라고?"라는 생각을 통째로 낚는 느낌인 건 있었죠..
심리적 맹점을 건드리면서 현혹&빌드업 오답으로 몰아가는 방식..
저런 선지가 1~2번에 배치되면 더더욱 잘 속게 되더라구요ㅋㅋㅋ
그나저나 칼럼 가독성 너무 좋네요. 이해가 쏙쏙 됩니다!!
저도 좀 더 엔터키 누를 때 생각을 해야겠습니다..
충분히 가독성 넘칩니다!
사랑해요
오자마자 월클 등극하신..
팀 화작인데 글 잘읽었어요
헐 두번째 문제
보조사 '는'으로는 주어 문장성분의 기능을 나타낼 수 없어서 틀렸다 생각했는데
그냥 주어자체가 아니어서 틀렸다가 올바른 풀이구나
뭔가 언매는 점점 수험생과 출제자 간 수싸움이 되어가는 느낌이 드네요
언어(문법) 기출은 국어 영역으로 바뀐 해(2014였나..?)부터 모두 분석하면 될까요? 좋은 칼럼 항상 감사드립니다!!
항상 언매에서 시간이 오래걸렸는데 이때문인거같네요. 감사함다
화작도 좀 부탁드립니다ㅠㅠ
이건 강사들도 무시하는 과목이라 답이 없네요..
분명 빨리 읽으면서도 정확도를 챙기는 문풀 방법론, 선지 털어내는 법 등이 있을 건데,
계속 한 개 씩 나가거나 시간 질질 끌리는 구간 생기는 게 너무 스트레스네료 ㅠ.ㅠ
언매는 버리는게맞다.. 잼병이면..
차라리 화작 만점을 노리는게..
문법 고난도만 선별된 문제집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