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위악 [728914]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23-02-09 10:26:36
조회수 1,796

회상-어느 아비의 아해 입대기

게시글 주소: https://image.orbi.kr/00061928885

 <회상-어느 아비의 아해 입대기>


2021년 5월 9일. 일요일. 서울 반포고속버스터미널 오후 1시 고속버스. 행선지 진주.


진주에서 하루 묵을 곳을 아해는 인터넷에서 예약했다. 숙소 이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트윈 베드였다. 창밖으로 풍경이 잘 펼쳐진...


입대. 공군 진주 교육사령부.


1988년 10월 27일 목요일 제대할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아해가 아들이면 그놈도 군대에 갈까? 그때는 조금 달라져 있지 않을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군 복무 기간이 30개월에서 18개월로 줄었으며, 병영이 ’민주적‘이 됐다는 것 외에는... 


늦은 나이(24세 2개월 17일)에 입대했기에, 녀석은 공군에 가겠다고 했다. 3개월이나 더 긴 것을 왜 감수하느냐고, 군대는 무조건 짧은 게 장땡이라고 했지만, 선택은 확고했다. 


도착 뒤 숙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고기나 먹자고 했다.


평소에도 항상 까탈스럽고 따지기 좋아하는 아비 마음이 어디 가랴!


두 명이 갔기에, 일단 고기 2인분을 시키려니 주인은 ”3인분이 최소한도“란다.


부아가 치밀었다. 입대하는 사람들을 이리 이용해 먹나?


아해 눈치도 살피지 않고 바로 나와버렸다. 다른 고깃집도 다 마찬가지였다. 실제 싸움은 하나도 못하면서, 따지기만 좋아하는 아비의 성격을 잘 아는 아해는 ”부대찌개나 먹자“고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입대 전날 저녁을 마친 뒤 숙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을 마실 생각은 나도, 놈도 들지 않았던 듯하다.


그렇게 잠든 새벽. 깼다. 


참 이상했다. 1986년 7월 18일 입대하던 날, ’입대를 늦게 해서 쌍욕을 먹는 꿈‘에서 깼을 때 밖은 밝았다. 곧 동이 트겠구나 생각하면서 뒤척이는데 도통 밝아지지 않았다. 시계를 보았더니 새벽 1시 30분쯤이었다. 


그리고 35년이 가까이 지나 아해가 입대하는 날, 나는 또다시 새벽에 깬 것이다. 새벽 3시쯤이었다. 


그리곤 잠을 다시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아해는 아침 6시쯤 일어났다. 


입대 시간이 21년 5월 10일 오후 1시였는지, 2시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1초 1초가 무척이나 빨리 간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기억난다. 


숙소를 나선 아해는 복사할 곳을 찾았다. 공군은 자대 배치 때 필기시험을 치는데, 자주 등장하는 기출 문제를 먼저 입대한 친구로부터 파일로 받았는데 복사를 못 했다는 것이다. 복사할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밑져야 본전, 진주경찰서 충무공 파출소에 무턱대고 들어가서 사정을 설명하니 흔쾌히 도와주셨다. 심지어 ”칼라로 복사해 드릴까요“라고 묻기까지 했다. 그 고마움... (그 며칠 뒤 나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입대 장병 가족에게 도움을 주신 충무공 파출소 경관 님들 감사합니다.‘라는 문서를 올렸다. 감사의 마음만은 표해야겠기에... 진주경찰서는 ’당시 근무 경관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겠다. 고마움을 표해주셔서 우리가 감사하다‘고 답했다.)


아해는 햄버거를 먹자고 했다. 두 명에게 최소한 3인분 고기를 팔아야 한다는 진주 공군 교육사령부 주변 고깃집들에 부아가 치민 아비를 다시 설득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남강 어느 천변에서 테이크 아웃한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천변은 참 맑아 보였다. 둔치의 수풀도 예쁘게 자랐고. 


이제 들어갈 시간 아니냐는 아해에게 그리 말했다. 일찍 들어가 봐야 군 생활 10분이라도 더 길어지는 것이라고. 가능하면 맞춰서 가자고. 아해는 답하지 않았다.


입대 마감 시간에 맞춰 공군교육사령부로 향했다. 아직 마감 시간은 30분 정도 남은 듯했다. 들어가려는 아해를 다시 막았다.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가자.


그렇게 부대 정문 주변의 어느 골목길에 앉았는데, 차 한 대가 골목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리고 나오는 어느 청년. 어머니인듯한 분이 청년을 달래고 있었고, 아비로 보이는 분은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아, 저 친구, 입대하기 정말 싫어하는구나. 그에 비하면 나는 행복하네...


더는 입대를 미루기도 힘든 시간이 될 무렵, 아해는 핸드폰을 건넸다.


아부지, 내 부대 주소 나오면 인스타그램에 올려줘. 


위문 편지는 받고 싶은 것일 터. 아니 그래도 ’최소한의 소통‘은 하고 싶을 터. 


나도 그랬다, 훈련소에서. 위문편지를 나눠줄 때 훈련소 내무반에 흘렀던 묘한 기대감이란... 37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위문 편지 온 이들의 이름을 부를 때 훈련병들 사이에서 감돌던 기대감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핸드폰을 건넨 아해는 부대 정문으로 들어섰다. 더 이상 나는 갈 수 없는 곳. 아해는 훈련소 내무반으로 데려갈 버스를 기다리는 장소로 이동했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 어머님도 그랬다.


한데, 입대하는 아들을 가장 애닯아 하는 이는 나는 아비라고 생각한다. 군대를 아니까. 저 새끼가 얼마나 고생할지 아니까...


1986년 7월 18일 논산훈련소로 입대한 나는 그랬다. 부모님의 전송을 받으며 충성문까지 들어선 뒤 부모님들이 더는 우리는 볼 수 없는 모퉁이를 지나면, 저 멀리서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외쳤다.


”야이 씨팔 쉐키들아, 안 뛰어와~~~“


뒷모습을 넋놓고 한참이나 보고 있으려니, 조교인 듯한 병사 하나가 다가왔음조차 몰랐다.


”아버님! 아버님 마음은 잘 알겠는데요,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셨으면 합니다.“


내가 부대 정문에 너무 가까이 다가섰던 모양이다.


그렇게 한 20분쯤 지난 뒤 아해는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 훈련병 내무반일 것이다.


아해가 버스를 타는 것을 지켜본 뒤에도 한동안 교육사령부 정문을 뜰 수가 없었다. 


그렇게 국방부 시계는 21개월이 흘렀다. 


2023년 2월 9일 오전 8시 30분. 아해는 공군 성남비행장에서 단장에게 전역신고를 마쳤다. 


내일부터 아해는 입대 전 근무했던 학교로 다시 나간다.


오늘따라, 1988년 10월 27일 목요일 오전이 떠오른다. 서울 용산 미8군 17항공단에서 단장에게 전역식을 마친 뒤, 나는 그리운 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