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원 [1144720] · MS 2022 (수정됨) · 쪽지

2023-02-03 18: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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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 7년, 그리고 서울대 (병원에서 학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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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지난 7년 간의 오르비


글 읽기 힘드신 분들을 위해 한 줄 요약 : 설대 합격, 탈르비


첫 방문 : 2016년 3월 중순

제1계정 : 2016년 11월 ~ 2021년 1월 (탈퇴)

제2계정 : 2022년 ~ 2023년 3월 1일 (탈퇴 예정)

안녕하세요. 김채원입니다.



다들 2023년의 겨울의 끝은 모두 평안하신지요.

이제 2022년도 입시(2023학년도)가 끝이 보입니다.

합격하신 모든 분들 축하드립니다.

추가합격을 기다리시는 분들 응원합니다.

아직 수능을 보지 않은 사람들, 내년엔 더 좋은 곳을 가려는 사람들 역시 힘내시기 바랍니다.



오르비를 떠나기 전... 지난 7년간의 이야기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시절, 주변 친구들에게 오르비를 처음듣게 되었고 흥미로워서 입시 사이트를 들여다 보고, 2016년 11월, 지금은 120만이 넘어가는 아이민이 70만을 갓 넘겼을 시절 처음으로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채원이가 데뷔하기 한참 전이라서 다른 아이돌 계정을 활용한 이름을 사용했었는데, 채원이 데뷔 이후에도 귀찮아서(어차피 활동량이 0인지라) 바꾸지 않았습니다. (계정이 뭔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전 계정에서 사용하던 아이디와 관련이 있습니다.) 



  계정을 만들었지만 당시에는 커뮤에 글 올리거나 댓글 다는 것조차 지금하곤 비교도 안되게 무서워하던 시절이었고, 애초에 로그인도 잘 하지 않고 눈팅식으로만 가끔가끔 들여다 보고, 오히려 대학 들어간 후 더 자주 보게 되더군요. 그 사이에 여러 글들을 보았고, 저에게 도움이 되는 글들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그렇게 활동 없이 오르비를 눈여겨만 보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서성한 이상만 가도 만족한다던 저는 모종의 사유로 2017년에 서울대학교 병원 폐쇄병동에 1달여를 갇혀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학교 시험을 빠져서 내신도 나락으로 가버리고, 세상과 단절된 채, 전자기기 하나 없이 안에서 하루 종일 갇혀 있었습니다. 침대에서 누워서, 처음으로 서울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 안에서 다양한 환자들의 양상을 보면서, 나는 그래도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퇴원 후 열심히 해서 여기저기 다 붙고 싶었습니다. 다만 현역 때는 지금의 10%도 공부하지 않았을 때이고, 툭하면 죽는다더니, 자살한다더니 하다가 응급실까지 실려갔던터라 결과가 좋을 수가 없었고, 역시나 그 해 모든 시험 중 1등급이 뜬 과목이 한국사 빼고 단 1개도 없었고, 2등급도 드물며, 대부분이 3, 4, 5, 심지어 6, 7까지도 내려 앉았습니다. 다행히 논술 하나 겨우겨우 최저 맞춰서 붙은 것 빼고는 택도 없는 성과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힘들었기에 그냥 그 대학에 만족하면서 다니기로 하고, 반수고 재수고 계획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생활을 하면서 오르비는 점차 잊혀져가고, 약 2년이 흘렀습니다.



  2021년 1월, 이사를 가면서 더 이상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인터넷 계정(게임, 포털, 커뮤...)들을 전부 지울 때 오르비 계정도 같이 지워버렸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계정의 끝이었습니다. 오래했던 일을 끝마칠 때처럼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4번째 수능을 실패하고, 5번째 수능 보기 한참 전에 무슨 생각이었는진 몰라도, 갑자기 계정을 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판 것이 지금의 2번째 계정입니다. 아마 외로워서 그랬나 싶기도 하고,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습니다. 지금도 왜 계정을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5번째 수능을 끝내고, 가채점을 하였습니다. 

  점수는 97 92 1 1 44 44 3, 현재 기준 표점으로 표점합 401(서울대식 401.8) 이 떴을 땐 기대치 보다는 못 미친 것 같아 약간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일단 커리어하이였고, 올해 어디 하나는 무뎐히 합격하고 편안하게 소통이나 하면서 옛날엔 오르비 이랬는데~ 이런 일이나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5번이나 수능을 봐서 이젠 어딜 가더라도 그냥 만족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사실 올해 내신이슈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어디에 써야할지도 이미 계획을, 그것도 성적표 나오기 전에 라인을 그려놓은 상태였습니다.





  12월, 차가운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가채점=/실채점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계산실수 한 기억은 없는데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확인 결과는 간단했습니다.

  모의고사 때는 간간히 마킹실수가 있었지만, 수능 때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마킹실수를, 그것도 대참사 급으로 해버린 걸 확인했습니다. 다시 써진 제 점수는 95 85 2 1 42 37 3, 표점합 385(서울대식 385.7)으로 16점(영어 2 때문에 저는 17점 떨어졌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사실 영어 중요성을 생각하면 표점 1이 훨씬 뛰어넘기에...)이 나간 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현역이나 20살 시절이면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텐데, 이미 나이가 20대 중반이라서 그냥 힘이 빠질 뿐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옥상에서 한숨쉬며 땅바닥 바라보는, 허망함 그 자체에 휩싸였습니다. 이제는 극한의 인생을 끝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서울대 마지노선은 암만 후하게 잡아야 380 후반~390 초반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7년 간 바라만 보던 오르비에 뭔가 흔적은 남기고 싶어서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탄글, 점공글, 뻘글 등을 얼마간 쓰고 한숨만 내쉬던 일상을 약 1~2개월 가까이를 반복했습니다. 그 동안 방에만 박혀 지내면서 생활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유서를 쓰기도 하고, 한강에서 죽을지 질소로 죽을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생활까지 포함하면 7년 째 고등학생의 장수생 뇌나 마찬가지니까요. 여기서 응생화 점공으로 난리를 친게 벌써 1달이 되었는데, 의외로 집에서는 잠잠하게 있었습니다. 혼자 울고, 혼자 앓고, 제가 생각해도 저 점수가 붙을 거라는 생각은 1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냥 헛된 희망, 날린 시간, 억울함 등으로 몸부림을 쳤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점공은 계속 위로만 들어오고, 낙지 탈퇴 전 이미 점공 상 14명 모집에 14등이었던데가, 위에 상위권 미점공자들이 들락날락 거리고, 심지어 어제 합불 결과를 보기 전 12~13등 분이 불합 뜬 소식을 보면서 내년을 기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 결과 소식을 듣고 오늘 발표가 나기 전까지, 계속 울다 웃다 구르다 미친 짓을 반복하며 밤을 새면서 결과 확인을 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유서를 쓰면서. 오늘 동생 졸업식 가면서 어제 오후에 나온 결과를 드디어 확인했습니다.

  


    네, 보시는 그대롭니다. '합격'. 보고서 혹시 잘못 입력했나 싶어서 다시 클릭했고, 결과는 같았습니다.



  결과를 보고 든 생각은 '이거 전산오류인가? 아니 내가 점공 분석을 미친듯이 했는데 이게 어떻게 붙냐고...' '이 점수가 왜??' 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합격 소식을 알리고 주변에서는 난리를 치는데 혼자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해서 분명히 기뻐야 하는데, 뭔가 오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혼자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종교도, 사람도, 심지어 나 자신도 믿지 않는 제가 믿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수미잡', 근 10년을 이 말을 되뇌이다 그 효과를 올해 저 스스로 증명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끝날 때 까지는 끝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모르게 실수를 할 수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요. 처음에는 합격증 보고 "점수가 너무 아쉬워서 내년에 메디컬을 가야하나?"라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예전 글들에서 이미 언급을 몇 번 했었지만, 이미 제 나이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여기서 미필은 군필+2로 생각하니까 만약 올해도 한다면 저는 미필 6수(반수긴 하지만), 군필 8수하고 똑같아지는 셈이죠. 누구라도 수능을 6~8번 보기는 굉장히 힘이 들고, 또 그래야만 하더라도 힘들긴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30대도 수능을 보는 마당에 24살은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니고, 또 그런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눈치받기도 싫고, 또 힘들게 하기도 싫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사적으로 만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방구석 폐인이나 다름이 없어서 나중에 기회가 되더라도, 일단 1년은 다녀보고 나중에 도전하던지 말던지 결정해야겠습니다. 올해는 아마 20년도 수능처럼 재미로 볼 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서울대 합격에 대해서는 기쁘긴 하지만, 절대로 자랑하거나 뽐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본인도 99% 이상 안 될거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미친듯이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거의 평생 운을 다 쓴 것 같아요. 이 행운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게 여기고, 또 사실상 제가 (최초합 기준으로는) 막차로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가장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대학을 다니겠습니다. 이미 4살 차이나는 현역들하고도 잘 지낼 생각을 해야겠네요. 또 그 동안 오르비에서 점공 글을 계속 써서 피곤하셨던 분들이 계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현재 그 글들은 거의 삭제가 된 상태입니다.



  예전에 제가 2월에 떠난다고 했는데, 진심으로 떠날 생각입니다. 아마 3월 1일 자정부로 이곳을 탈퇴하면서 나갈 것 같네요. 어쩌면 친구가 없었던 중고등학교 시절보다 오르비가 더 정들어버린 건 왜일까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특히 예전 그 응원글(나의 옛날이야기, 링크)에서 힘을 얻었고,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응원해 주셨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이 글 이후로는 제가 언급했던 "마킹 실수를 하지말자!"와 관련한 글을 올리면 사실상 글을 올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이 글 이후로 글 1~2개 올라오면 제 7년 오르비 생활도 잠시 쉬거나, 영원히 끝나거나 그렇게 되겠죠.



  서울대병원 환자에서 서울대 학생까지, 거의 매일이 죽고 싶은 순간이었는데, 죽지 않고 버텼기에 오늘 합격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대인기피 때문에 오로지 집에만 틀어박혀 공부하고, 집중장애로 공부하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뛰어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꿈만 같겠지만 분명 꿈이 아닙니다.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이건... 기적입니다. 이제 드디어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정신질환 치료 단계에 있지만, 언젠가는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도 친구 하나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오르비 여러분들, 모두 앞으로도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말씀 올립니다. 모두 행운이 있기를...



주인 김채원 올림





"I go to ride till I die die 더 높이 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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