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글싸개 [1159823] · MS 2022 (수정됨) · 쪽지

2023-01-27 21: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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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어?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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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어족에 대하여(1) 서론



우리말, 한국어의 조상은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내려온 것일까? 한국어와 같은 뿌리를 가진 말은 과연 존재할까?


언어의 원천을 찾고 다양한 언어를 하나의 범주로 묶는 시도는 과거부터 있었다. 개별 언어들이 어떻게 변해 왔고 이 과정을 기술하고 비교하며 공통 조어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을 우리는 역사비교언어학이라고 한다. 학계에서 큰 이견 없이 분류되는 범주는 인구어족(인도유럽어), 로망스어군, 니제르어족 등이 있고 과거의 어족으로는 원시 인구어족(PIE) 등이 있다. 한국어는 그 계통이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과거 이론의 잔재이며 일반인 사이에서 이 사상이 퍼진 이유는 과거 교육과정에서 구시대적인 유행에 탑승해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또는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못을 박아 버린 게 몇 년 동안 지속되어 그런 것이다. 과연 여기에서도 그렇게 배운 화석이 존재할까 싶긴 하지만 만약 있다면 배웠던 내용은 머리에서 지우길 바란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단정적인 분류는 없다. 7차 교육과정에서부터 “(...) 국어의 계통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다. (...) 아직은 분명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아 가설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라고 밝히며 한국어의 계통론을 접근하는 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심지어 알타이어 학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어족'을 주장하기엔 무리였는지 ‘알타이제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고 이들의 조상보다는 유형론적 유사성만을 비교하는 추세이다. 제어라는 명칭하에 유형론적 유사성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같은 조상을 지닌다는 것은 한 번도 비교언어학적으로 제대로 증명된 적이 없다. 알타이제어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는 유형론적 유사성에 중점을 두고 이 제어에 속한 언어들이 같은 조상을 지닌다고 주장하나 현재에 와선 반대 의견이 많은 낡은 이론으로 치부된다.


20세기에 제기된 알타이어족 가설은 문법적인 유사성과 발음상의 유사성을 보고 시작된 가설이다. 람스테트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언어학자들이 알타이어족을 아시아의 여러 어족(튀르크어족, 퉁구스어족, 몽골어족, 일본어족, 한국어족)의 상위 어족으로 보았으며, 다른 서양 학자들도 이를 입증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이들 언어를 사용하던 원시 민족이 분열되기 전의 거주지가 알타이 산맥 근처라는 가설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이 어족은 ‘알타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인구어(인도유럽어)족의 증명도 성공하였으므로 알타이어족도 금방 정설로 취급되리라 생각하였으나 어휘들의 체계적인 음운 대응을 제시하는 데 대단한 어려움을 겪었다. 또 어미나 조사의 존재, 교착어(어간과 어미가 쉽게 분리되는 언어), SOV의 어순, 모음조화 등의 문법적인 유사성은 확인할 수 있으나 이들이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드라이어의(Matthew Dryer) 연구 결과에 따르면 SOV 어순을 가진 단어는 1377개의 언어 중 565개이다. 그리고 교착어도 동북아시아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핀란드어나 페르시아어 등의 다른 언어에서도 보이는 유형론적 성격이다. 과연 문법적인 성격의 유사성만으로 동계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이다. 모음조화나 SOV 어순은 절대 과학적인 계통론적 근거가 될 수 없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있었다. 일단 람스테트와 포페라는 대표적인 알타이어학 지지 학자가 처음으로 한국어를 알타이어족에 넣으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숭녕, 이기문, 김방한 등의 여러 교수들도 무비판적으로 한국어의 계통이 알타이어족이라며 따랐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점점 알타이어족의 성립에 반대하는 학자들이 늘어났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길운 교수나 최기호 교수 등 여러 교수들이 기존의 한국어 계통론 연구는 잘못되었다며 비판을 하였고 기존의 지지자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알타이어족의 존속 가능성도 문제가 생기는 판에 “한국어가 과연 알타이어족에 속할까?”라는 의문이 나온 것이다. 기존에 한국어의 알타이어족설을 지지하던 김방한 교수는 연구할수록 의문점만 늘어난다며 언어의 접촉에 의한 차용이 그 원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고, 이기문 교수 역시 알타이어족으로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 두 교수는 원래 알타이어족설을 지지하던 대표적인 학자였으나 20세기 말에 등장한 반대 의견과 체계적인 어휘 대응 부재로 반대 혹은 중립으로 의견을 바꾼 것이다. 현재에는 교과서에서도 완전히 퇴출됐고 대부분의 주류 학계에선 알타이어족의 성립은 실패했으며 한국어의 동계어는 존재하지 않고 계통론적 고립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 됐다. 



폐기된 이유


그렇다면 어째서 알타이어족을 설정하기엔 무리가 있고 한국어는 계통론적 고립어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결론이 나게 됐을까?


일단 역사비교언어학이란 걸 알아야 한다. 역사비교언어학이란 언어들 사이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조사하고 계통을 분류하는 학문인데 여기서 중시하는 기본 조건은 


1) 현대가 아니라 고대 아무리 빨라 봤자 중세의 언어로 비교할 것. 현대의 형태는 비교해 봤자 환빠들이 하는 음 끼워맞추기밖에 안 되며 언어는 자연스레 변하니 최대한 과거의 기록으로 비교해야 한다. 


2) 기초 어휘의 음운론적 대응을 확인할 것. 그리고 그러한 대응이 있다면 일부가 아니라 "규칙적으로" 대응이 되는지도.


3) 음운론적 대응을 살필 때 의성어나 차용어는 배제할 것. 의성어는 사람들이 듣는 소리를 쓰는 것이니 비슷할 수 있고, 차용어는 다른 언어에서 빌린 것이니 A 언어와 B 언어를 비교할 때 C언어에서 유래된 A 언어의 어휘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차용어가 있다 ≠ 같은 계통이다


이렇게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이미 말했듯 SOV 같은 어순이나 교착어나 굴절어, 고립어 같은 유형론적 분류를 가지고서 계통론을 논할 순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 어휘의 음운 대응이다. 



ㄴ 위의 고려할 점에 대해 얘기한 “NativLang”이라는 유튜버의 영상 중 일부. 관심 있으면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차용어를 배제한 기초 어휘들을 비교하고 규칙적인 음운론적 공통점을 찾은 후 원시 알타이어족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재구하라는 얘기다. 


기초 어휘의 대응을 기반으로 어족을 설정하는데 학계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는 


1) “알타이어족이 존재하는가”

2) “알타이어족이 있다 쳐도 한국어가 이 어족에 속하는가?”이다.


오늘은 간단하게 1만 보자. 1에 대해선 부정적인 견해가 대다수인데 기초어휘의 규칙적인 음운론적 대응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차용어를 근거로 삼지만 차용어는 근거가 될 수 없고 몇 가지 관련 있는 어휘가 있으나 그 정도 어휘수를 가지고 계통론을 논하는 건 코미디다. 차용어라 해도 그 수는 일부이고 관련 있어 보이는 어휘들도 고대까지 가면 규칙적인 음운론적 대응을 발견할 수 없다. 같은 조상에서 내려온 인구어족과는 다르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의 유사성은 왼쪽의 그림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고대로 가면 갈수록 각 어휘의 유사성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고 동족어로 보기에는 수사의 유사성, 신체 지칭 어휘의 유사성, 규칙적인 음운 변동이 보이지 않고 수렴 진화와 차용의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으므로 많은 언어학자들이 알타이어족을 반대하는 것이다. 20세기 중후반에 알타이어족 학설을 주장하던 학자들도 거의 다 반대파로 돌아섰다. 




대표적인 학자가 반도일본어설(논란 존재)과 한국어/일본어 연구의 권위자인 알렉산더 보빈이다. 보빈이 주장한 알타이어학자들의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차용어를 동계어의 근거로 삼았고, 관련이 없는 단어들을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일부러 음이나 뜻을 바꿔 서로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으며, 일부의 어휘만으로 동계어라는 말도 안 되는 일반화를 펼친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차용어의 존재는 동계어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이들이 주장하는 관계가 있는 단어들은 매우 극히 일부이고 그들마저도 대부분 기초 어휘라고 할 수가 없다. 보빈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알타이어학의 존재를 주장하려는 근거는 단순한 “민간어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한국어 어원학자들도 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정범 교수는 알타이어학과의 연관성을 과도하게 의식하여 비전문가 수준의 민간어원을 주장하였다. 통시적으로 뚜렷한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 몽골어 단어와 튀르크어 단어를 엮기도 하였다.




결론


정리해 보면

1) 기초 어휘인 신체어나 친족어가 유사한 것이 거의 없고 그나마 대명사 몇 개가 유사하고 수사에선 유사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2) 음운대응의 규칙성이 정확하지도 체계적이지도 규칙적이지도 않다

3)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의 언어 구조는 상당히 유사하지만 차용과 언어 접촉, 수렴 진화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4) 문법요소의 일부 유사성은 계통론을 증명할 근거가 될 수 없으며 문법 요소의 차용도 가능하다. 

5) 관련이 있어 보이는 대부분의 단어는 일부분이고 일부러 유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우기는 경우도 더러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밀접한 접촉을 가졌고 서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결과 언어구조가 유사해졌고 차용어로 인하여 공통요소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초 어휘 대응의 부재와 규칙적이라기보다는 무작위에 가까운 어휘 간의 연관성을 미루어보아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은 같은 뿌리에서 분화되어 내려온 동계어라기보다는 유목민족의 별개의 언어가 서로 몇만 년 혹은 몇백만 년 동안 접촉하여 어휘를 차용하고 교류하는 과정으로 인해 문법적인 특성이나 일부 어휘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목민족 간의 문화적 교류 그리고 인종의 융합 그리고 유목 민족이 아닌 민족의 언어와는 전쟁이나 무역 등의 역사학적 연관성을 보고 차용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지리적인 환경이 비슷하거나 교류가 흔히 일어났다면 그리고 그 교류가 단순히 몇백 년에 그칠 게 아니라 몇천, 몇만 년까지 갈 정도라면 서로 다른 두 언어는 충분히 닮아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주류 학계의 의견이고 정설이자 통설이다. 알타이어학은 일종의 종교가 되어 낡은 이론을 붙들어매는 사람들의 성서가 되어 버렸고 이미 당사자(이기문, 김방한)도 중립기어를 박은 이론을 재야언어학계에서는 신명나게 사실인 양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저명한 학자 중 알타이어학설을 아직은 버리지 않은 학자들도 있지만 정설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Nativelang의 말 중 일부를 인용하며 이번 글을 끝내겠다.

“In his[Alexander Vovin] eyes, they[propenents of the Altaic family] had ignorantly resorted to a "prescientific" method and were indoctrinating followers into "a set of beliefs" that had basically become a religion.”



다음 글은 2에 대해 아주 집중적으로 조명할 예정. 

rare-쉬라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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