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사쵸 [1125063] · MS 2022 · 쪽지

2023-01-13 09: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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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생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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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수험생 사이트에 쓰는 마지막 글이었으면 한다.대학입시는 미련없이 23수능으로 완전히 마무리하고 싶다.그런 의미에서 오르비를 탈퇴하고 이제 이런 한량같은 생활도 청산하겠다는 마음이다.정리하면서 여기에도 정이 들었구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글 하나 정돈 남기고 싶었다.내가 지금껏 공부해온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온 사람은 나 하나이기에 사실 이 글이 내 4년 간의 유일한 기록이고 내 두 뱃지 만이 그 증거가 되는 것이다.참 가볍고 보잘것없이 3년을 더 써버렸다.


바야흐로 2019년.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좋아하는 여자때문이었다.공부를 참 잘했다.그때 내 눈엔 그랬다.

난 인생을 반 쯤 포기한 채로 체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애를 보고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어울리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이 말도 안되는 생각으로 초등학교 6학년부터 해온 운동을 때려치고 고3 3월 문과로 정시 공부를 시작헀다.

수능 내신 정시 수시 뭔지 하나도 모른채로 무작정 시작.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난 공부 못하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등신,공부하고 정확하게 대척점에 있던 학생이었으니 그럴만하다.


처음 고1 수학베이스도 없는 상태여서 학원수업을 못따라갔다.

결국 혼자서 쎈으로 고1수학을 끝낸 뒤에 수능기출문제집으로 문제를 풀면서 수능수학 개념을 공부했다.

그냥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학원 선생님한테 질문하고 기본적으로 자습하는 식으로 공부.

인강이 뭔지 알았더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좋게도 난 운동보단 공부에 재능이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을 제치고 나름 정시 유망주가 된다.(물론 인서울 어디쯤은 가리라는 유망주이다)

나중엔 수학 학원에서 천재 소리도 들어봤다.정시 서성한조차 없는 곳에서 그 사람들이 뭘 알았겠는가


난 어깨 뽕만 늘어갔다.특히 10월 교육청에서 나형 전교1등을 찍고 자만심은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그리고 당연히 수능은 만만찮다.


일단 수학부터 조졌다.나형 3등급으로 첫 수능을 마친다.


수능과 연애,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치고 당연하다는듯 이과로 전향해서 의대 정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의대가서 의사되서 돈 많이 벌고 나중에 좋아하던 여자애를 찾아가서 행복하게 결혼하는 꿈을 꿨다.

상상만 했다.상상만


공부 시작하면서 페북 삭제하고 전번,카톡 싹 다 차단하고 인간관계를 한번 정리한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그게 간지난다고 생각했다.왜 그랬을까..


유시험쳐서 강대기숙들어갔다가 (들어간게 용하다) 

자습 시간이 부족해서 기숙 독재학원에 들어갔다.


하루 종일 책상앞에 앉아서 뭘 끄적였다.거의 하루 10시간 넘게 수탐공부만 했다.

이때 뉴런 처음 듣고서 눈물을 흘리며 깨달음을 얻었다.

현역때는 인강이 있는 줄도 몰랐고 수학 학원에서도 수업도 안 듣고 자습했으니 사실상 완전히 독학이었다.

인강이 이렇게 좋은 거면 진작에 들을껄...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게 너무 서러웠다.


이때의 기억때문에 소위 '머리 깨는 공부'를 혐오한다.이외에도 이유는 있지만 여튼 당시의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나는 뛰고 있는데 다른 애들은 오토바이타고 경주 중이었던 것이다.


3월모평(학원에서 모아놓고 친다)때 가형 6에 물지 56던가.. 1년간 내가 쌓아온 자만심이 한방에 박살났다.

이과가 어렵다는 얘기를 그제서야 실감..수학시험치고 중간에 나가서 토할뻔했다.재수한거 솔직히 후회했다.


6평때 가형 3등급에 물지 2등급.이과로 전향한 것치고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는다.물론 의대엔 턱도 없다.


그 학원에서 참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도 받고 예쁜 여자애도 좋아하고 담배도 배우고 별 짓을 다했다.


그래도 공부는 진짜 열심히 했다.실력이 늘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느꼈고 진심으로 공부가 너무나 즐거웠다.

실력이 느니깐 더 열심히 하고 그러니 더더욱 실력이 늘고.양성 피드백.


9모때 가형 89점

내 4년 입시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성적.

의대는 턱없이 부족해도 서성한까진 갈 지 모른다 혼자 꿈에 부풀어있었다.


막바지엔 거의 탈진해서 멘탈이 박살나있었다.주변에 벌써 다음 수능을 생각하는 애들도 있었고 심지어 폐인이 되서 방 밖으로 안 나오던 친구도 있었다.


수능날 버스타고 가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정말 등신같이 재수를 망친다.시험 외적 요소였다....자세한 건 좀 얘기가 길다.


아마 백분위 94 80 3 79 99던가 확실한건 지학이 48점이었다

제일 잘 봤으니 이것만 정확하게 기억한다ㅋㅋㅋㅋ


집에 차 타고 오면서 아버지께 삼수 선언


난 지금 당장 다시 봐도 이 점수보다 잘 나올거니 대학 안걸고 쌩삼수를 하겠다.


용케도 망한 점수로 동홍 공대 끝자락 붙이고 다시 독재에 들어간다.


그리고 정말 하루 종일 수학만 했다.하루 10시간 진짜 통으로 수학만 했다.

수학 실모만 150개정도 풀고 하루 3실모도 간간히 했다.


국어는 스스로 득도했다고 생각했다.

긴 수험 생활로 깨달은 건데 이런 생각이 들 때를 조심해야한다.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과목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이때가 내 수험 생활..어쩌면 앞으로의 인생까지 통틀어서 제일 국어를 잘하던 시기다.

사설에서도 거의 웬만해선 1등급 이상이었다.


수능이 한 3달 전부터는 그냥 지각 신경을 안썼다.일주일에 낮 10시 등원하는 날들이 점차 많아졌다.

피시방도 가고 밤도 자주 새고 화장실에서 꾸벅꾸벅 틈새 잠도 자고 쉬는 시간에 몰래 나가서 군것질하고 

당일치기로 여행도 가고


공부 할 땐 열심히 했는데 일탈을 자주 하곤 했다.

 

당시에 배가본드에 푹 빠져있던 터라 무아지경?의 상태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일탈로 수능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비운다.이런 취지였다.


그리고 6모치고 벽을 느껴서기도 하다.내 생각엔 딱 삼수 6모시점부터 지금까지 내 실력은 하나도 늘지 않았다.아무리 실모를 풀고 강의를 들어봐도 스스로 느끼기에 실력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내 노력의 원천이었던 실력 상승감이 사라지고 주변의 경쟁 상대도 없으니 동기부여할 것도 없었다.공부 시작하고 2년만에 재능의 바닥이 들어난 것이다.다만 실수를 없애는데에 집중했다.고점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나름 괜찮은 성적이 나왔다.


6,9모 둘다 평백 98정도에 영어2

컨설팅에서 9모 성적이면 지방치 갈수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대망의 수능때 22수능을 치게된다

전날에 태국음식점에서 똠양꿍 라면먹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밥집이었다) 장염걸려서 4시에 잠이 깼다.

국어 5분전까지 화장실 갔다와서 인생 종칠뻔했다...

다행히 시험에 딱히 영향이 가진 않았으나...


하필이면 22수능....국어에서 백분위 93을 찍어버린다.매번 시간 부족때문에 스트레스받았는데 제발 나오지 말라던 불국어가 나왔다....언매부터 20분걸렸다.


대신 역대급 물로켓 미적.평소에 생각만하던 원점수 100점.

다 풀고 시간이 한참 남아서 하나라도 틀리면 조진다는 심정으로 계속 검토했다.

풀면서 1컷 92나 96나와서 인생 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좀만 더 어렵게 내지 왜 그랬냐고 평가원을 원망했다..


결국 미적100덕분에 어찌저찌 연공 추합에 지거국약 최초합.


수학뽕이 고삼때만큼 올라와서 공대를 가고 싶었다....약대가면 수학 안할 거 아니야?

글 쓰면서 느끼는 건 난 정말 낭만 넘치는...속된 말로 병신이었구나 싶다.

정말 가고 싶은 데로만 가고 살았구나



3수가 끝나고 연대 송긱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차라리 재수때 멈출걸 그랬나.삼수해서 연대가 의미가 있긴 한가.

현역으로 XX대 가는 게 차라리 나은 것 같은데 왜 삼수 했지..개발자는 학벌도 의미 없다는데

약대 갈껄 괜히 고집부렸나

커뮤든 현실이든 약대 왜 안 갔냐고 물어볼 때마다 속이 쓰렸다.


근데 어차피 의대가면 되는거 아닌가


그래서 한번 더 했다.그리고 난 그때는 자신이 있었다.의대간 친구가 부추긴 탓도 있다.

영어1만 만들면 지방의 씹가능이라는게 그 녀석의 주장


학점을 던지고 1학기때 딱 지금처럼 한량처럼 살면서 수험생 커뮤를 들락거렸다.추억이기도 하고 흑역사기도 하다.


사반수는 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었다.3수까지 독학했으니 나도 재종에 가보고 싶었기도 했고 커뮤러들 보면서 부러움을 느낀 것 같기도 하다.마침 장학도 충분할 만큼 나왔다.


더럽게 힘들었다.순공시간도 안나오고 수업도 듣다가 결국 포기.자습으로 채웠다

작년보다 잘봐야하니 압박감도 심하고 삼수 6모때 느꼈던 정체 상태에 숨이 막혔다.

단편적 지식들은 쌓여갔지만 수능은 그런 걸로 잘 볼 수 있는 시험이 아니란 걸 알았다.


결국 삼수 때처럼 또 지각하고 주말엔 가지도 않고 피시방가고 밤새고 가서 엎드려 자고..

글을 읽으면서 한심하다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변명하자면 재종에서 하루하루 버티는게 삼수때보다 훨씬 힘들었다.재종 시스템은 나한테 너무 안맞았다.진심으로 다시는 못 해 먹을 짓이다.

그리고 삼수때 쌓아온 공부습관이기도 하다.사람은 잘 안 바뀐다.


성적 올리는 거 솔직히 막연하게 올릴 수 있겠지라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수학도 그냥 시험이 쉽게 나와 운이 좋았던 거라는거 알고 있었는데...


여튼 어떻게 저렇게 버티고 (버텼나?)

결국 23수능을 본다.


수학빼곤 꽤 잘본 줄 알았는데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특히 수학에서 벽 느꼈다.나름 수학에 자신있던 내가 어째서 이런 점수가


덕분에 그냥 여기서 수능은 손절치는게 맞다는 확신이 섰다.

4년, 내 20대 초반 청춘을 갈아 넣었다.남은건 두 뱃지와 과잠뿐


성공담은 당연히 아니거니와 본받을 만한 수험생활도 아니다.

뭔가 딱 떨어지는 이야기보다는 그냥 내가 느낀 것들 해온 것들 최대한 그대로 써내고 싶었다.


죽을만큼 열심히 했느냐 절대 아니다


하지만 4년간의 과정이 필연이었다고 생각하고

수험 과정에 있어서는 단 한 치의 후회도 없다.


혹여나 이 글을 보고 내가 누군지 알겠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모른 척해줬으면 한다.

글쓰고 바로 나갈거라서 지우기 곤란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빌어먹게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그럼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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