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원 [1144720] · MS 2022 · 쪽지

2023-01-06 21:00:18
조회수 4,442

5번째 수능을 마치며(커리어)

게시글 주소: https://image.orbi.kr/00061133714

여기에 글을 쓰면서 저의 과거 수능 시절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눈물을 삼키고 이젠 자신을 좀 정리할까 합니다. 부정적인 글을 새해부터 초반에 썼었지만, 정서상 좋지 않아서 다 지웠고 대신 마음 속 깊은 울림을 이제는 쓰고 있습니다.더 이상 채원이한테 부끄럽지 않게, 24살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제 수능 커리어를 여기에 적어볼까 합니다.



무시마 내가 걸어온 커리어.



1. 처음 평가원(19 6평) 때입니다. 처음 본 평가원 시험은 천지개벽 그 자체였습니다. (국어 91, 수가 85, 영어 4.19%, 한국사 10%대 전후, 화1 42, 지1 41), 공부가 부족한 현역에게는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입니다. 당시 우리 반도 그렇고, 저도 완전히 성적이 개판이었습니다. 점수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등급으로 54654였으니까요. 그런데 철이 없을 그땐 점수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나고, 무너지고, 힘들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재밌는 것은 고작 수특+EBS로만 2~3등급은 물론이고 1등급도 뜰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진 저였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금 1달 분량 공부하고 성적 잘 나오길 바라는...)



2. 다음 평가원(19 9평) 때는 공부를 해야겠지 했지만 정신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공부보다 심신 안정에 초점을 두고 여름을 후지부지 보냈고, 시험고 그냥저냥 봤습니다. 당시 등급은 24543, 국어 1컷이 높아서 고1~고3 때 시험 본 것 중 최초로 2가 떳습니다. 문제는 이 국어 때문에 또 수능 전까지 자만하고 있었다는 점이... 이때 사관 시험을 본다고 해놓고 접수 기간을 놓쳤고, 수시 접수도 까먹고 있었다가 3시간 전에 급히 집어 넣었던 어리숙한 현역이었습니다.



3. 첫 수능(19)을 맞이한 순간입니다. 모든 게 낮설고, 무지하게 긴장을 했었습니다. 홀수형, 자리, 마음가짐.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채로 수능을 봤고, 국어에서 막힘과 동시에 뒤에도 도미노처럼 무너지던 시간이었습니다. 밥도 먹히질 않습니다. 끝나고 어머니가 데리러 오기 전 산악 지역의 학교에서 노을을 보는데 그냥 주저앉아서 한 5분 울다가 안 운 척하고 나왔습니다. 등급은 43323, 예상보다 더 떨어질 줄 알았는데 간신히 최저를 맞추고 서울 모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4. 두 번째 수능(20)이었습니다. 19학번을 즐기느라 6, 9평도 안 보고(시험지조차 보지 않았습니다.), 공부량이 사실상 0에 가까웠지만 여유가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작년하고 다르게 문제는 어느 정도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등급은 33332로 작년보다도 성적이 잘 나왔고 수시 응시를 할 수 있었지만.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아니어가지고 딱히 대학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5. 세 번째 수능(21)이었습니다. 일단 작년과 비슷하게 공부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년 수능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집에서나마 6, 9평, 교사경 등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주변 분위기 느긋히 관찰하면서 응시한 결과 등급은 22221, 큰 특이점은 없었지만 이 한 해만큼은 제가 수능 봤다는 것을 아무도, 가족도 모르고 있습니다. 마스크 쓰고 24석 시험을 보는 첫 해, 마스크 끼고 시험을 본 적이 없어서 그 점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내년엔 메디컬 합격증을 받을 것이라고.



제일 높은 곳에 난 닿길 원해.



6. 네 번째 수능(22)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현역 시절과 같이 6, 9평도 응시하였습니다. 메디컬 열풍에 휩쓸려서 다시 이 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 바로 갔으면 좋았겠지만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터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9평 때 성적 때문에 심각하게 도취해 있었습니다. (11211) 그러나 수능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 곳입니다. 제대로 털렸습니다. 등급은 32133, 수학 가형이 공통으로 변한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작년보다도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국어가 어려우면 뒤의 성적들까지 같이 나가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이때는 방심했던 터라 이 점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이 반성했습니다.



7. 다섯 번째 수능(23)입니다. 전년도에 떨어짐과 동시에 나이, 병역, 자금 문제 등으로 신경쓸 것이 더 늘어났고, 공부 시간 자체는 작년 대비 2~3배 늘었지만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6, 9월까지 잘 버티다가 후반부에는 완전히 맛이 갔고, 그나마 공부량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수능장에 들어섭니다. 5번이나 들어오는 곳이지만 뒤에 놓인 현실로 인한 압박은 더 나를 누릅니다. 최선을 다해 응시, 가채점(기억상) 때는 전부 1이 떳고 드디어 이 판을 뜨는구나! 하는 감격에 제대로 자만해 있던 참이었습니다. 가채점을 제대로 하지 않은 대가는 참담했습니다. (평가원 확인) 이런저런 마킹 오류로 21213으로 주저 앉아 버렸습니다. (이 시험에서 5년 동안 처음으로 밀려쓰기, 맞게 풀고 다른 답 쓰기, 수학 13X 마킹 등 별의 별 실수를 다 했습니다.) 메디컬/서울대가 눈 앞에서 날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5번의 수능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끝일거라 생각했던 5번째 수능도 결국 6번째를 기다려야 하는 성적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5년 간 응시에 합격한 횟수는 단 한 번(아직 정시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것도 현역 수시 때라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난 왜 점수가 안 오르지라는 고민을 하였는데, 돌이켜보니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찍맞 아니었음 평균 4등급 수준이 실수 없었을 때 평균 1등급이 나오는 건 느리지만 분명히 성적이 오른 것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뭔가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가 않았습니다. 


과거와 현재, 불과 4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2019년 대학교 처음 갔을 때의 그때 그 마음, 교수님과 친하던 그 시절이 사라지고 지금 저에게는 열등감, 후회, 비관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동기들은 하나 둘 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듯 싶고, 선배들은 떠나고, 학교 선생님들도 하나둘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잠시 멈춤, 그리고 여러분들의 글들을 읽어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저는 현역 시절처럼 굉장히 오만해져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입학 시기에 그 여유로운 감정을 24살이나 되어서 찾으러 갑니다.


물론 학벌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계속 이 점에 압박을 받으면 올해도 시간낭비하다 6번째 수능도 망할게 눈에 선했습니다. 당장 올해도 국어가 어려운 편이 아니었는데 개인적인 압박감이 작년 수능 국어보다 심했습니다. 5년 간 느끼는 점이지만 역시 '수미잡'은 정말 명단어가 확실합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다 부숴버리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힘들었지만 결심했습니다. 일단 지원한 2곳에 모두 떨어지면 이를 시인한 후 2년간 휴학한 나의 첫 대학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초심의 마음으로 전공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처음으로 돈도 벌어보면서 사회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풀릴때 쯤 다시 이 판으로 돌아올 계획입니다.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미련을 가지기엔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일단은 현실을 직시하고 백의종군한 후,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더 겸손해져서 24수능에 돌어올 겁니다. 



I go to ride till i die die




19학번 새내기 때 소심한 저를 챙겨줬던 15학번 학생회장 형은 졸업했고, 올해 23학번이 들어오는 지금 제가 그 형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짤의 빨간 글씨(정확히는 '반'을 끼워넣어야 맞습니다.)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불평하지 않으렵니다. 올해 다시 대학생활 재미있게 보내다 다른 곳으로 떠나렵니다.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죠.

이제 고등학교 입학하던 시절만큼 미래로 가버리면 30대가 됩니다. 언제까지 애처럼 살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진정한 성인(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기입니다.


누군가는 한 번에, 남들보다 빨리 입시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몇 년을 해도 힘든 사람, 아예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래도 성적이 오르는 편이고, 대학도 있으며, 가능성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올해 입시를 마무리 지을까합니다. 16~17시즌부터 같이 지내왔던 오르비... 정들었습니다. 같이 23수능 치르신 여러분들 그리고 올해 24수능 치르시는 여러분들, 응원합니다. 그리고 잊지 맙시다. 끝날 때까지는 절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걸.



멋진 결말에 닿게, 불길 속에 다시 날아 Rising




감사합니다. 오르비 일원 여러분.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