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어 기출 분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 - 독서편 (2) (feat. 22수능)
2211 헤겔 변증법 지문.pdf
칼럼 인덱스 : https://orbi.kr/00043624020
[칼럼] 국어 기출 분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 - 독서편 (1) (feat. 22 수능)
: https://orbi.kr/00056708861
* 지문을 첨부합니다. 헤겔 지문을 옆에 두고 읽으시면 좀 더 이해가 잘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칼럼에 이어서 계속 써보겠습니다.
(3) 한 문장 안에 개념어 제시
개념어라고 했지만, 꼭 개념어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느낌으로 제가 이런 말을 만든 걸까요? 한 번 보겠습니다.
'~세계의 근원적 질서인 '이념'의 내적 구조도, 이념이 시공간적 현실로서 드러나는 방식도 변증법적~'
(2)에서 다뤘던 문장인데, 다시 가져왔습니다. '한 문장 안에 개념어 제시'를 파악하는 방법은, 그 개념어를 설명하는 문장을 다시 써 보는 겁니다. 제시된 내용을 보고, '이념은 세계의 근원적 질서이다.' 라는 말을 할 수 있겠죠. 사실 별로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무의식적으로 되는 학생도 있을 겁니다.
'그에게서 미학의 대상인 예술은 종교,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의 한 형태이다.'
이건 어떨까요? '예술은 그(헤겔)에게 미학의 대상이다' 라고 해도 맞는 말입니다. 또, '종교와 철학은 절대정신의 한 형태이다.' 라는 말도 맞겠네요.
'절대정신은 절대적 진리인 '이념'을 인식하는 인간 정신의 영역을 가리킨다.'
이제는 느낌이 올 겁니다. '이념은 절대적 진리이다.' 라는 말이 나와야겠네요. 물론 저렇게 바꾸고 추가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이념이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모르긴 몰라도 일단 헤겔 입장에서는 이념을 절대적 진리라고 봤네?" 처럼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겠죠. 이런 게 무의식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앞에 말했던 '나만의 말'로 이해하기보다는 한참 쉽습니다.
한 가지 더, 제가 말씀드린, 이번 수능에서 '한 문장 안에 개념어 제시'를 활용한 문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걸 도대체 왜 알아야 할까요? 언젠가는 나올 거니까.
이것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출을 볼 때는 이미 나와있는 지문과 문제만 고려하는 게 아니고, 출제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물어볼 만한 부분이 뭐가 있을지도 떠올려 봐야 합니다. '미출제 요소' 생각하기. 다음 문장으로 가겠습니다.
'~일방적 승리로 끝나도 안 되고, 두 범주의 본질적 규정이 소멸되는 중화 상태로 나타나도 안 된다.'
바로 나와야 합니다. 중화 상태는 본질적 규정이 소멸되는 것을 말한다. 라고 해도 맞는 말입니다.
(4) 배경 지식 활용하기
지겹도록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헤겔 지문에서는 그렇게까지 배경 지식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떤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정립-반정립-종합. 변증법의 논리적 구조를 일컫는 말이다.'
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변증법 = 정반합입니다. 변증법의 논리적 구조이기도 하지만, 변증법 그 자체를 정반합이라 부르기도 하죠. 그리고, 정반합을 통해 도출된 합(合)은 다시 정(正)의 입장이 되어 또 다른 반(反)과 대립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이렇게 대립 -> 도출, 다시 대립 -> 도출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논리로 설명하는 게 변증법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딱히 지문에 쓰이지 않았지만, 지문을 볼 때 '익숙함'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예술은 직관하고, 종교는 표상하며 철학은 사유하기에~'
좀 쉬운 내용입니다. "철학하면 당연히 사유지ㅋㅋ"이라는 게 시험장에서 떠올린 나만의 말이었는데, 아마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저렇게 이해하면 더는 설명이 필요 없죠.
의문이 살짝 들 겁니다. 철학 -> 사유는 상식 아닌가? 맞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상식 = 배경 지식입니다. 제가 겉치레가 아니고 진심으로 겸손하게 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이 많습니다. 저에게는 배경 지식일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겐 상식일 수 있죠.
마찬가지로 금리, 환율, 경상 수지 등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 배우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배경 지식이었을 테고, 브레턴우즈 지문이 그래서 논란이 있었겠죠. 하지만 초중고 교육 과정을 거친 학생이 풀 수 있는 선에서 배경 지식을 활용한다는 교육과정 지침서의 내용 자체가 제 말과 완전히 똑같은 맥락입니다.
저것도 나만의 말로 바꾸면? 그냥 상식 선에서 배경 지식을 활용하겠다 이겁니다. 다만 정시로 방향을 트는 대부분 학생이 초중고 교육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저는 이걸 배경 지식으로 설명합니다. 배경 지식 칼럼을 쓰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쯤 하고 다음 문장으로 가겠습니다.
'~예술이 절대 정신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지성이 미발달된 머나먼 과거로 한정된다.'
이 부분도 배경 지식을 활용할 수 있죠. 인류의 보편적 지성이 미발발된 머나먼 과거라는 말을 보고 저는 동굴에 그려진 벽화 등을 떠올렸습니다. 항상 말하지만 그게 맞든 틀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어차피 내가 잘못 떠올린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문제를 틀릴 텐데, 잘못 떠올리면 어떡하냐는 질문을 할 필요가 없겠죠.
그에 더해서 예술-종교-철학으로 이어질 때 종교는 덩그러니 중간에 왜 있을까요? 저는 중세 시대를 생각했습니다. 이때는 종교가 모든 걸 지배할 시기이고,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까지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결국 철학이 최고 지위를 차지하게 되고, 지문에서 제시한, 철학이 완숙 단계에 있다는 말은 당연히 이를 의미할 겁니다.
거기에 더해, 저는 읽는 내내 "그럼 전시회는 뭐야? 설명이 다 쓰여 있는데 이게 객관적인 건가?" 라는 생각을 했죠. (나) 지문이 굉장히 어려웠지만 저는 당황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작품 전시회를 생각하면, (나)에서 제시한 "사실 예술 작품은 사유를 매개로 하여 설명되지 않아?"라는 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유 없이 어떻게 예술의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물론 2109 주제통합 지문에 나온 거처럼 작품 감상 태도가 객관적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주관적이어야 하는지 토론을 할 수도 있겠으나 핵심은 그게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늘 이런 식입니다. 배경 지식은 언제나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할 겁니다. 쓰다 보니 헤겔 지문은 배경 지식을 그렇게 많이 요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제가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간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배경 지식이었을 테고. 다시 말하지만 시험이 어려웠다는 것에 대한 이견은 없습니다.
3. 평가원스러움
정말 논란이 많은 주제죠. 저는 '평가원스럽다.'는 느낌이 존재한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추상적인 부분이다 보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인류가 모여살게 되면서,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체외 기생충을 옮기는 일이 흔해졌다. 털층이 퇴화한 이유는 바로, 체외 기생충이 질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체외 기생충에는 빈대나 벼룩 등이 있다.
위 문장을 평가원스럽게 바꿔보겠습니다.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이후,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체외 기생충의 빈번한 전파는 큰 문제였기 때문에 빈대나 벼룩 등 질병을 일으키는 체외기생충에 노출되지 않도록 털층이 퇴화했다고 보는 것이다.
혜윰 모의고사 독서 지문의 내용을 가져온 건데, 문장을 다시 한 번 써보겠습니다.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이후,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체외 기생충의 빈번한 전파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기 때문에 빈대나 벼룩 등 질병을 일으키는 체외기생충에 노출되지 않도록 털층이 퇴화했다고 보는 것이다.
처음에 보여드린 보라색 문장과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아마 다시 쓴 문장이 훨씬 평가원스럽다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솔직히, 글 자체를 읽기 싫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평가원스러운 느낌이 뭔지 정리해볼까요.
콤마(,)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 긴 문장을 제시하고
쪼개도 될 문장을 하나로 써서 호흡을 길게 만들고
(한 문장 안에 개념어 제시를 활용해야 하는 이유죠)
쉬운 단어를 냅두고 한자어를 주로 사용하며
~의, ~적인, ~하는 것, ~에 대한(관한), ~를 통해 ~함에 있어서 와 같은 말이 불필요할 정도로 많고
쓸 데 없는 피동 표현을 자주 사용하죠.
이 글을 읽고 나서 기출 지문을 아무거나 찾아서 풀어보면 알게 될 겁니다. 저는 이걸 '평가원체'라고 부릅니다. 이 느낌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만의 말'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죠. 난해한 문장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야 간단한 문장으로 바꾸는 일도 가능하니까요.
검토할 때도 수정 직전에 항상 하는 말이, "문장이 틀리고 맞고를 떠나 평가원은 글을 이렇게 쓰지 않는다." 입니다. 혜윰 모의고사 비문학이 나름 좋은 평을 받았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감각적으로 직관이 들어와야 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사실 인강은 듣지도 않는데 얼마나 시끌시끌하면 저같은 사람도 알까요ㅋㅋ)
어쨌거나, 이런 특징을 수험생이 의도를 가지고 찾아내는 게 가능할까요? 일단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많이 봤을 뿐입니다. 선지와 발문에서도 평가원스러움을 찾을 수 있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독서 문학 선택과목 모두 '평가원체'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글이 길어지니 이 정도까지만 하겠습니다.
기출 분석해야 한다는 말에 휘둘려 불안에 떠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저러한 공통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만 가지고, 반복해서 읽어보시면 깨닫는 바가 있을 겁니다.
+) 덧붙이자면, 어떤 글을 쓸 때 위에 나온 평가원체를 최대한 덜 사용하려고 노력하면 글 쓰는 실력이 많이 늡니다. 자소서 첨삭할 때도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죠. (정시로 대학갔는데 자꾸 자소서 봐달라는 이야기가 들리는 게 참 과분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신기한 건 결과가 나쁘지 않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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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 보면서 국어 공부 방향성? 같은게 좀 더 잡히는 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아 참고로 저도 인강은 듣지 않고 국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헉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비문학 시간을 좀 줄여야겠다고 느끼고 있었어요
물론 모고나 집모 보면서 시간이 부족했던 적은 거의 없긴 한데 그게 거의 다 문학을 빨리 풀어서 시간을 단축시켰던 거라...
앞으로 나의 일상언어적 표현은 평가원의 언어를 사용한다
잠깐 게시판 들어갔다가 알아차렸는데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준 분이었네요
그 글도 참 댓글 곡해해서 듣는 분들이 꽤 계셨던 거 같은데
제 글이 오해를 좀 풀어줬으려나요ㅋㅋ..
감사합니다
‘배경지식’ 이라는게 진짜 무서운것 같네요… 수험생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치중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결국엔 자기상태 파악이 1번이네요..
저도 처음에는 너무 무식한 편집 방식을 써서 하나 쓰는데 7시간 걸리고 그랬었어요 ㅋㅋㅋㅋ 하다보니 이것도 나름 관성이 있다해야하나..
저번에 좋은 일(6모 모집)하고 계시던데 응원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평가원스러움인 긴 문장을 읽으실 때의 대처법이 따로 있으실까요?
저는 가끔 호흡이 길다 느껴지면 끊어읽기를 해봅니다!
또, 일상 독서 중에 특히 고전에서도 평가원스러움의 문장들이 자주 보이는 데
그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속도를 잠시 늦추며 독해를 하시나요?
더욱 저의 독해에 확신이 생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