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라는 법은 없다
라고 재작년 이맘때즈음부터 줄곧 뇌까렸던 것 같다.
당장 살아남을 돈이 부족해 병원에 그만 가기로 결정한 서울 모처의 굴다리 밑에서도
손질하지 않아 낡고 무뎌져 버린 옛 재주를 억지로 끌어다 쓰는 것이 잘 안 되어 보도블럭을 양손으로 마구 난타하던 새벽 다섯 시에도
그렇게 완성한 최후의 도전장이 미ㄹ봉된 편지봉투 째로 세절기에 들어갔을 때도.
어디 높은 곳이나 물이 많은 곳에서 술을 잔뜩 퍼마시는 것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실행할 때마다 몸이 늘어져갈수록 또렷해져만 가는 정신은
맹목적으로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겠지 하고 명료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군대 입대를 결정한 날과 군에서 수능을 다시 치기로 결정한 날과 군에 입대하기 전날과 훈련소 격리가 끝나던 날 등등에도
혀를 깨물고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으려니. 그밖에야 달리 유효한 진통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 멀쩡히 살아 있으므로,
죽으라는 법은 없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참이다.
그래도 여전히 변화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두렵고 싫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일수록 아주 작은 변화에도 대단히 무력해지는 것이
스스로가 심히 비겁하게 느껴지나 그렇다고 느낌이 드는 것을 노력한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나는 그리 유연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다지만
그렇다고 까무러치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무언가 곤란한 대답을 요구당하는 때에
혀뿌리를 기점으로 온몸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가는 느낌
그것은 어느 해 어느 새부터 아무 발언을 시도할 때마다 느끼게 되었고
돌려 말하면 모든 발언은 내게 곤란한 대답이 되어 가고 있었다.
생각건대,
어느 날 나는 눈이 멀고 귀머거리가 되어 땅바닥에 넘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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