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고 조경민 [875628] · MS 2019 · 쪽지

2022-03-08 00: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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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효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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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오늘 영감을 받고 쓰는 글인데


제가 지금까지 공부를 해오며 느낀 점을 적어 봅니다.


딱히 이론적/과학적 근거는 없으니 적당히 비판적인 자세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부도 다른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노력성취 사이에 '효율'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공부는 내 주어진 시간을 써서, 그 시간에 무엇에 대해 노력할지 정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과정보다 중요한 것은 '성취'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대부분의 공부는 위와 같은 그래프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A 구간입니다.


A 구간은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이면서, 노력 대비 성취 효율이 가장 좋은 구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영어 공부로 따지자면 기초 단어를 외우고, 기본 영문법을 공부하는 단계이며


국어로 따지면 문학 개념어를 익히고, 문법 개념을 공부하는 단계


탐구로 따지면 개념 인강을 듣는 단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능 영어, 국어, 사회탐구를 예로 들자면 


A 구간을 마무리할 때쯤 3~4등급 정도의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예전에 한참 과외를 많이 할 때


수능을 두어달 남기고 6~7등급의 학생을 가르치게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 목표는 '어떻게든 A구간을 넘겨서 B구간에 도달하게 하자'였습니다.


만약 공부를 아예 놓고 있다가 수능을 앞두고 공부를 시작한 학생이 있다면


A구간을 넘기는 것을 목표로 공부해야 합니다.




A구간을 넘기는 데에는 딱히 요령이나 방법 같은 것이 없습니다.


보통은 암기의 비중이 제일 높은 단계이며


이때는 그냥 우직하게 앉아서 열심히 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노베이스 학생들이 '영어 단어 잘 외우는 팁 없나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그런건 없고 그냥 많이 읽고 많이 쓰면서 외워야 합니다.




A구간을 힘들게 넘긴다고 해서 명문대를 갈 성적을 낸다거나


특정 분야에서 특별한 성취를 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저는 A구간을 넘기느냐 넘기지 못하느냐가 꽤나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은유와 반어의 의미를 알고 그 예시를 들 수 있으며


확률과 통계의 기본 개념을 알고 있고


열역학 제1법칙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찌보면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모르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 공교육은 최대 다수의 학생들이 A 구간을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박학다식하다면


그 사람은 여러 분야에서 A구간을 넘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B 구간은 A 구간에서 알게 된 개념을 적용하며 실력을 키우는 단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장은 A 구간보다 적게 보일 수 있으나


자신이 알게 된 것을 어느정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국어 공부로 따지자면 글을 많이 읽고, 개념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문제에 적용해보는 단계입니다.


B 구간은 수능 등급으로 치면 대략 2~3등급 정도의 성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은 C 구간입니다.


저는 공부의 진정한 묘미는 C 구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념도 공부하고, 적용하는 연습도 다 마무리하면(=B 구간을 지나오면)


쉽게 점수나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성적 상승에 있어서 정체기가 오게 되는 것이죠.


이때는 공부를 해도 느는 것 같지가 않고,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인강 커리도 열심히 따라왔고 기출도 꽤 풀어봤는데 왜 점수가 안 나오지? 시간이 왜 안 줄지?'


이런 고민이 생기는 시기요.




C구간에서는 학생 스스로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계단식의 성취를 보이는 곳이라,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실력이 잘 늘지 않죠.


이러한 깨달음은 남들이 100% 말로 알려줄 수는 없는 것들인데


혼자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스스로 뭔가 솔루션을 만들고, 자신만의 원칙을 설정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이 구간에서는 한 번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실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개인적으로 뛰어난 선생님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 C구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수 개념 등을 알고 있는 학생을 상대로


그 학생이 개념 이상의 무언가를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영감을 주는 선생님이죠.


수학에서는 현우진 선생님 뉴런이 이런 강의라고 생각하며


제 국어 교재 '만점의 생각'도 C구간을 넘기는 것을 돕기 위한 교재로 기획했습니다.




C구간은 제대로 된 공부 방법을 찾지 못하거나, 학생이 스스로 계단을 올라갈 역량이 없다면


혼자 힘으로는 아무리 공부해도 만년 2~3등급에 머물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절실한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C구간의 후반부쯤에 온다면 수능에서는 1등급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D구간입니다.


D구간은 이전의 어떤 단계보다도 효율이 떨어지는 구간입니다.


노력하면 실력이 늘긴 느는데 그게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닙니다.


C구간을 넘겼다는 것 자체가 공부에 필요한 개념, 깨달음 등을 충분히 얻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더한 성취를 내기는 몹시 힘든 일입니다.




사실 오늘 글을 쓰게 된 이유는 D구간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들어서였습니다.




저는 공부에 효율을 몹시 중시하는 사람이고


고3때 수능을 준비할 때도 '모든 과목에서 C 구간에 도달하기'를 목표로 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D구간이 효율이 몹시 떨어지기 때문에, D구간에서 괜히 허우적대지 말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C구간 후반부에 도달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 전교 1등이 있었는데


그 친구랑 독서실에서 공부 얘기를 하다가


제가 '아 이거는 공부해도 효율이 안 나오는 부분이니까 차라리 그거 좀 덜하고 이거 하는게 나을 거 같음'


뭐 요런 식의 얘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 왈 


'공부에 효율을 따져?'


이러더군요...


모든 공부에 있어서 효율을 따지던 저에게는 꽤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친구는 상당히 효율이 낮아보이는 방식으로 저보다 훨씬 많은 시간동안 공부를 하는 친구였는데


결국 그 친구는 자신이 가장 가고 싶던 서울대의 인기과에 진학했고


저는 적당한 성적을 받고 연세대에 진학했습니다.





얘기가 좀 샌 것 같기는 한데, 


저 친구 얘기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깨달음은 '어떤 분야든 최상위에 도달한 사람들은 효율을 생각하지 않고 노력한다'였습니다.




결국 A~C 구간까지는 효율적으로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고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학생들은 수능으로 따지면 1등급 중반 정도의 성적을 거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령 수능에서 만점을 받는다거나, 저명한 교수가 된다거나, 뛰어난 작가가 된다거나 하는 일들은


효율을 생각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들인 것 같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D구간의 중후반에 도달한 사람들이고


그 정도의 성취를 얻으려면 공부가 취미가 되고 여가가 되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구간의 초반에 있는 사람과 D구간의 중반에 있는 사람을 비교하면


단기적으로는 큰 차이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D구간의 중반에 있더라도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더 못할 수도 있는 것이고,


D구간의 초반에 있더라도 운이 좀 따라준다면 더 잘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런데 장기로 가게 되면 노력의 차이는 절대 뒤집히지 않습니다.


D구간의 초반에 있는 사람과 D구간의 중반에 있는 사람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그 성과의 차이는 누가 보더라도 눈에 확연히 드러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저도 수능 공부든 대학 공부든 최상위권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수능 국어에 있어서는 최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르비는 상위권 학생들이 많은 커뮤니티이고


사회에서 최상위의 성취를 내고자 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하여


제가 얻은 작은 깨달음을 공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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