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君 [27444] · MS 2003 · 쪽지

2014-03-29 23:08:09
조회수 11,224

수능 기출, 몇 개년이나 분석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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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우연한 계기로 어떤 사법고시 합격자분과 밥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분이 대뜸 제게 물었습니다. “해황 씨, 수험생활의 핵심이 뭔지 알아요?” 잠시 주저하는 동안 그분이 대답했습니다. “바로 효율이에요.”

이번 글에서는 효율의 관점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수능 기출, 몇 개년이나 분석해야 하나?

몇 개년 분석해야 하냐고 물으면 보통 3개년(9회분), 5개년(15회분) 등의 답변을 주로 얻습니다. 한정된 수험기간 동안 분석하고 반복할 수 있는 분량이 보통 그 정도일 수도 있고, 어쩌면 기출문제집을 만드는 저자/출판사 입장에서 ‘적당한’ 두께으로 만들 수 있는 분량이 그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제 지인 중 한 영화감독은 영화를 공부할 때 다음과 같이 했다고 합니다.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통해 영화를 공부하고, 이후 제작을 위해 자신이 택한 분야의 최근 영화들을 섭렵했다고. (라쇼몽 같은 영화는 1950년도에 나왔지만 꼭 보라고 강추해줬습니다.)

기출문제를 얼마나 분석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이를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대 기출문제 중 우수한 문항을 공부하고, 이후 최근 경향에 적응하기 위해 최근 3개년을 실전처럼 훈련하고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게 전 개년을 푸는 것보다 효율적이고, 최근 3개년/5개년을 푸는 것보다 효과적입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그렇다면 우수한 문항을 어떻게 추려낼 것이냐? 전 개년 기출문제를 수없이 풀어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책이 될 수도 있고 강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교재가 강의가 상향평준화된 터라 유명한 책이나 강좌 중 자신에게 맞는 것을 택하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2. 왜 훌륭한 교재나 강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앞서 효율(=기출문제 선별)을 위해서 교재나 강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면 제대로 된 이론을 얻을 수 있고, 제대로 된 이론을 얻는다면 나중에 비슷한 문제가 나왔을 때 제대로 된 이론을 적용해서 문제를 맞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분석을 해서 잘못된 이론을 만들면, 나중에 비슷한 문제가 나왔을 때 잘못된 이론을 적용해서 문제를 틀리게 됩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기출분석을 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2004학년도 반론 문제입니다. 문제 핵심만 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려울 수 있으니 충분히 집중할 수 있을 때 아래를 읽기 바랍니다!)

문제. ‘반사회성이 없다면 재능이 개발될 수 없다’에 대한 반론은?
정답: 반회성이 없어도 재능이 개발될 수 있다.

잘못된 분석, 잘못된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편의상 사고의 단계마다 번호를 붙이겠습니다.)

잘못된 분석을 통한 잘못된 이론을 만든 사례
(1) ‘반사회성이 없다면 재능이 개발될 수 없다’는 ‘반사회성이 있어야 재능이 개발된다’와 뜻이 같아.
(2) 정답은 ‘반사회성이 없어도 재능이 개발될 수 있다’니까  ‘반사회성이 있어야 재능이 개발된다’에서 정답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3) 아하!  ‘반사회성이 있어야 재능이 개발된다’의 앞부분을 부정하니까 정답이 나오네!!!
(4) 기출문제 분석을 통해  [A → B에 대한 반론 = ~A → B]이라는 이론을 만들 수 있겠다!
    (참고로 ‘~’는 not을 의미함.)

학생들이 혼자 분석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위와 같이 설명하는 강의나 책도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물론 가르치는 분들은 역순으로 설명합니다. 즉,  (4), (3), (2), (1) 순서로 이론을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위의 이론은 다 틀렸습니다. 우연히 저 문제를 저런 식으로 때려맞혔을 뿐 다른 문제에 적용하면 문제를 틀리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쉬운 문제를 하나 제시하겠습니다.

문제. ‘수능 만점을 받으면 서울대 의대에 갈 수 있다’에 대한 반론은?

직관적으로 위에 대한 반론은 ‘수능 만점을 받아도 서울대 의대에 갈 수 없다’입니다.  하지만 앞의 잘못된 이론을 적용(조건문의 앞을 부정!)하면 엉뚱하게도 ‘수능 만점을 받지 못하면 서울대 의대에 갈 수 있다’가 됩니다. 당연히 틀린 반론입니다.


이런 이유로 훌륭한 교재/강의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한 이론을 배우고, 이를 적용하는 식으로 공부하는 게 당연히 효율적이고요. 정확한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올바른 이론을 적용하는 사례
(1) 올바른 이론: [A→B]에 대한 반론은  [A,  not B]이다.
(2) 이를 적용하면, [반사회성이 없다(A)→재능이 개발되지 않는다(B)]에 대한 반론은  [반사회성이 없다(A), 하지만/그러나 재능이 개발된다(B)]이다.

즉, 뒤를 부정하는 게 핵심입니다. 앞서 살펴봤던 잘못된 이론은 앞을 부정하는 거라고 했는데 완전히 반대죠.

(위의 올바른 이론 자체에 대한 논리학적 설명은 고등학생 수준에는 좀 어렵습니다.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면 고개를 끄덕이며 정리하면 되는  거고, 이해가 안 간다면 일단 받아들이면 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엔진의 작동원리까지 다 알 필요가 없듯이.)

이런 사례는 꼭 국어영역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영문법, 미적분, 물리의 경우 잘못된 이론을 스스로 만들거나(!) 혹은 잘못된 이론을 배우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후 잘못된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많은 잘못된 이론을 추가로 만들거나 배우며 공부량은 공부량대로 많아지고 문제는 문제대로 틀리게 되고요.



글이 길어져서 두 줄 요약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훌륭한 교재나 강의의 도움을 받기를 주저하지 마라.
rare-머리야 터져라! rare-이해황 rare-하트라봉이 rare-칭찬해오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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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중한이들 · 487333 · 14/03/29 23:15 · MS 2014

    그래서 전 훌륭한 국어의기술의 도움을 받고있다는(속닥)

  • 기술자君 · 27444 · 14/03/30 00:54 · MS 2003

    고마워요. 조금 민망하네요. 쿨럭

  • 연대가서강대를성대하게고대한대 · 444283 · 14/03/29 23:25 · MS 2013

    음 반박은 아니구요 덧붙이자면 좋은 컨텐츠도 중요하지만 시행착오도 중요한 것 같아요
    삽질을 해봐야 그게 왜 좋은 컨텐츠인지 암 실패해보고 틀려보고
    너무 효율 효율 거리면서 올바른 길이라는 거에 집착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너무 무서워하는 경항이 생기는듯
    헛짓거리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어떻게 보면 다 밑거름이 되죠
    즉 효율 특히 수험생에게 무척 중요하지만 그것만쫓아가다간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 더블에이 · 422765 · 14/03/30 00:28 · MS 2012

    실패할 필요는 없지만 실패했다면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얻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놓여있는 수험생이라면

    가장 '효율'적으로 '오래' 공부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효율'만' 따지면서 공부를 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은 사실...

  • 기술자君 · 27444 · 14/03/30 00:53 · MS 2003

    맞아요. 효율은 효과를 목표로 해야죠.

  • 러너s High · 288390 · 14/04/01 23:40 · MS 2009

    윗글에서 말씀하시는 효율은 시행착오가 이미 전제된 조건이겠지요~
    또한 시행착오라는것도
    겪지 못한 초보에게나,
    이미 겪은 고수에게나,
    자신의 상황에 알맞게 와닿게 됩니다.

    초보로써 효율만 고집하다가, 실패를 거듭하는것 또한,
    그 자체로서 하나의 중요한 시행착오 라고 봅니다.
    어쨌든 좋은 의견입니다^^

  • 기술자君 · 27444 · 14/03/30 00:55 · MS 2003

    비효율을 경험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너무 많이 겪지 않는 것도 중요하죠. :)

  • 행운은나에게로 · 494336 · 14/03/30 01:06 · MS 2014

    잘못된 분석부분 좀 잘못된거같은데..주어진문제에서 반론으로가면 A→~B라고 나오는데 누가 ~A→B로푸나요? 그러니까 왜 주어진 문제를 ~A→~B로 놓고 그거에서 정답을추론하는지 모르겠네요 대부분 문제와 정답사이에서 관계를 얻을거고 그럼 맞는 관계가 나와 다음문제에도 잘적용되는데..

  • 기술자君 · 27444 · 14/03/30 01:18 · MS 2003

    제가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 그리고 정확하게 하자면 A→B에 대한 반론이 A→~B인 것도 아닙니다. A, ~B입니다.

  • ThrowItAway · 478124 · 14/03/30 04:19 · MS 2016

    국어 칼럼인데 집합론 첫페이지를 보는것 같은 느낌 ㅋㅋ 생각난 김에 기술자군님 문제 하나 낼게요. '내일은 비가 온다'가 명제일까요, 아닐까요?? ㅋㅋ

  • 수능출제자 · 464760 · 14/03/30 04:47 · MS 2013

    국기로 평균원점수 15점 상승했습니다. 2년간 문제를 다 풀지 못하고 마지막 지문을 찍어야만했는데 한달 국기본걸로 시간이 남는 사태가 생기더군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첫번째반론 '반사회성이 있더라도 재능이 개발 될수 없을수 있어'는 틀린 반론인가요?

  • Thousands · 494839 · 14/03/30 12:34 · MS 2014

    제 생각에는 틀린 반론인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이던 재능이 개발 되지 못하는 상황일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국기에 나온 예시를 들어보면(다른 분이 하신 말씀이지만)
    "결혼을 해라. 그러면 당신은 후회할 것이다.
    결혼을 하지 마라. 그렇더라도 당신은 후회할 것이다.
    결국 결혼을 하던 안 하던 당신은 후회할 것이다."

  • 시발점 · 418219 · 14/03/30 16:19 · MS 2012

    ~a (= 반사회성 無) -> ~b (= 재능 계발 無) 를 논한 것인데
    a의 경우에도 ~b임을 논해 이를 반박하려는 것은 엄밀히 말해 맞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한 사람은 ~a의 경우에만 ~b라는 것을 논했을 뿐, a의 경우는 어찌 되든 알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경우를 보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父: 네가 시험 점수를 100점 받는다면 디아블로를 사 줄게
    子: ㅇㅇㅋㅋ
    (... 성적표 나옴 ...)
    子: 93점인데여 ㅠㅠㅠㅠ
    父: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까 사 준다.

    Q: 이때 아버지는 거짓말을 하였는가? (예/아니오)

    --------------------------------------------

    +) 더 극단적으로 예시를 들자면, 행렬 ㄱㄴㄷ 풀 때, 문제에서 특정한 행렬을 취급(= a라면)하라고 나와 있는데, ~a, b네? 올ㅋㅋㅋ 이거 틀린 명제ㅋㅋㅋㅋ하면 수리 말아 먹죠.

  • XMLT6 · 466012 · 14/03/30 09:19 · MS 2013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많이 쓰이는 반박법 아닌가요?
    a이면 b이다 를 반박할 때 ~a 이지만 b / a 이지만 ~b 모두요

  • Aciee · 443980 · 14/03/30 12:33 · MS 2013

    'a이면 b이다'는 모든 a의 경우가 b에 포함된다는건데 not a라고 해서 b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그러나 'a이지만 not b'인것은 a이면 b라고 주장했는데 b가 아니라고하는 것이니 반박이 될수있구요.

  • 시발점 · 418219 · 14/03/30 16:21 · MS 2012

    a이면 b를 반박할 때 ~a, b를 사용한다기 보다는 only a -> b를 반박할 때 ~a , b를 사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 신도시인 · 494164 · 14/03/30 13:33 · M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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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스칼뿌 · 493670 · 14/03/30 17:00 · MS 2014

    기술자님 군입대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르비에 기술자님의 글이 올라오다니?!

  • 의무경찰 · 409354 · 14/03/30 17:02

    국어의 기술을 좋은 문제를 골라서 추려낸 책으로 사용해도 되나요?

  • 서울대기계항공15학번LJH · 464135 · 14/03/30 17:47 · MS 2013

    기술자군 님 꼭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 2014 버전이랑 2015버전이랑 차이가 있나요?^^

  • BY보숙 · 454290 · 14/03/30 18:07 · MS 2013

    국어의 기술 3회독째 들어섰습니다.

    성적변화가 나타나는게 눈에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술자님 7개월후 성적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

  • ㅇㅇㅁㄻ · 499535 · 14/03/30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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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구이 · 416349 · 14/03/30 20:54 · M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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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용잉 · 491882 · 14/03/30 23:38 · M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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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루노아 · 118354 · 14/03/31 18:23 · M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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