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oon [473694] · MS 2013 · 쪽지

2013-12-24 11:27:49
조회수 1,464

정시 원서접수를 끝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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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생각이 많고 마음도 쓸쓸해서 적어봅니다

결과적으로 전 이대 사과/서강대 경제/경희대 자율전공 썼습니다.
가군 연고대 인어문 안 될까 기웃거려보기도 했고
나군 서울대 의류/간호도 고민해봤는데
남들은 그래도 높은 대학 써야한다 할지 모르겠지만
이전부터 원하던 게 경제 쪽 진로였고 딱히 과를 낮춘다고 붙을 점수도 아닌 것 같아서(되게 애매한 점수라고 생각해요) 그냥 진로대로 원서 질렀습니다(물론 지금 쓴 것도 간당간당하다는 것 압니다)

중1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지금의 진로 결정하는데는 아버지와 어렸을 때부터 나눴던 대화의 영향이 컸어요
아버지가 서울대 경제학과 나오셨는데 늘 그래서 그 집단에 속하고 싶어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높은 대학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빠 없어도 나 이렇게 잘 컸다고
열심히 해서 들어가고 싶었고,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서울대 수시를 쓸 때도 소아/농경제 쓰라고 하셨는데 후회 남기기 싫어서 경제 쓰겠다고 했습니다
안 될 확률이 높다고. 많이 들었어요
너무 간절하니까, 정시로라도 가고 싶어서 1년동안 열심히 공부했어요
모의는 모의일 뿐이라는 말들 하잖아요? 진짜 그렇더라고요
10월까지 점수 계속 올랐습니다 조금의 업앤다운은 있어도 전체적으로 상승폭이었고 9월에는 언어에서 틀린 1개 빼고 수외탐은 다 맞았습니다
1/1/1에 영어는 항상 100이어서 조금 기대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수능이 저렇게 나오고 나니까 많이 허탈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분했어요
내가 쟤보다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수능은 정작 쟤가 더 잘 보고
다른 친구들이 수시에서 우선 맞춰 가는 거 볼때마다 좀 비참하더라고요
노력했는데 결과가 이거냐 하고요
못난 거 알아요 그 친구들도 노력했고, 그 결과 받을만하니까 받았겠죠
근데 마음은 인정이 안 되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아, 재수해야겠다'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이번에만 어쩌다 못 본거야 재수하면 돼!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재수한다고 성적이 오를까.
제2외국어 챙긴다고, 영어 고난이도 문제는 어떤 걸 해야하는 건지 몰라서 영어를 마지막에 좀 소홀히 한 건 맞아요
재수하면 영어는 오를 수 있겠죠
그러면 그거 챙긴다고 어딘가서 또 문제가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학/사탐을 또 다 맞을 수 있을까. 제2외국어를 또 2등급 안으로 받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쉽게 재수를 결정할 수도 없더라고요

재수에 대한 주변 의견은 극과 극이더라고요
1년 더해서 서울대 가면 된다. 재수는 이런 애가 해야 한다.
그런 의견이 있나하면
이대/서강대도 좋은 학교인데 왜 애를 몰아세우냐
너의 역량이 거기까지니까 그런 성적이 나온거다. 그냥 지금 갈 수 있는 학교에서 잘 해라.
처음에는 네 한계가 여기까지라는 말에 반발심도 들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현역도 결국 가는 사람은 가는 거잖아요?

엄마는 재수하고 싶으면 하라고. 근데 정말 진지하게 재수하고 싶을 때, 단순히 엄마 눈치 보거나 주변 눈치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고싶으면 하라고. 무슨 선택을 하든 괜찮다고 하셨어요.
사실 이제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재수하고 싶은지, 그냥 이제 붙는대로 가고 싶은지.
정말 내가 서울대에 가고 싶었던 건지, 경제공부를 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아빠에 대한 동경이었던 건지.
그냥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주저리주저리 적어봤네요
한부모 가정이라고 너무 징징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집에서는 제가 첫째니까 이런 말 하기 힘들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건데
너무 나쁘게만 봐 주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혹시 불편하신 분이 계시다면 쪽지 주세요.
바로 글 내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부모님 두 분 다 계시다면, 꼭 잘해드리세요
못난 모습만 보시고 가셔서 지금은 잘해드리고 싶어도 안 계시니까 후회가 되더라고요
옛날에는 아버지한테 사랑한다, 존경한다 이런 말 하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아버지와 포옹하는 것도 되게 부끄러웠는데
그 때 힘들고 부끄러운 건 한순간이어도 후회는 평생 남아요
전 아직도 후회되는 게 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에 거신 전화를 저만 받지 못했던 거예요.
그게 제일 후회됩니다. 늘.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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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in-in-der-Welt · 349012 · 13/12/24 11:34 · MS 2010

    읽다가 보니 눈물이 흐르네요.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 헿ㅎㅎ · 413786 · 13/12/24 11:36 · MS 2012

    작년에님처럼갑자기망해서올해재수한사람인데요 그런케이스가강대에도정말많았고 재수해서잘되는경우도 안되는경우도 있어요 저도제자신에반신반의하면서 자신감없는상태에서재수를시작했고 하다보니다시마음도찾게되고하더군요 권유하는게아니라 지금생각이다가아니라는걸말해주고싶었어요 저작년재수시작하기전에제일가까운사람이너멘탈로극복못할거라고매번걱정하면서말렸는데 결국엔잘해냈거든요 그리고1년을더노력해서잃을뻔했던목표를이뤘을때얻게되는자신감은생각보다살아가는데있어큰힘이되어요 아버지생각하는맘이너무예뻐서댓글남겨봐요 그냥생각나는대로써서두서가없네요..ㅎ 아무튼 또래에비해의젓한것같은데 올해 대학가게된다면 가서도잘해낼수있을것같아요 암튼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 힘내세요! 응원!

  • no2610 · 382286 · 13/12/24 11:45 · MS 2011

    가슴이 짠합니다. ㅠㅠ
    일단 합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간절히 원하신다면
    다시 한번 도전해보시는 것도 괜찮지않을까 생각합니다.
    반수도 한 방법일 수 있겠고요.
    어떤 선택을 하시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ESPAVICTORY · 407104 · 13/12/24 12:48 · MS 2012

    파이팅! 이 말밖에 해 줄 수가 없네요

  • Revengee · 314134 · 13/12/24 13:49 · MS 2009

    수고많이하셨어요...항상 자랑스러워하실겁니다

  • 김희수 · 122309 · 13/12/24 14:38 · MS 2005

    기특하고 의젓한 학생이세요. 저희 딸이 재수했는데도 불구하고 언어를 91점 영어97점 한국사를 3점 하나 틀린데다 제2외국어까지 변변치 못하게 나왔네요. 재수를 하니 소신지원은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안정으로 가군 이대 나군 서강대 썼는데 사탐이 90퍼라 어디 한군데 맘놓고 쓸데가 없더라구요. 작년에도 점수가 비슷하게 나왔는데 저희애는 원서를 쓰지 않았어요. 그게 올해 너무나 후회가 되더군요. 제 아이랑 같이 재수한 친구들은 이대와 서강대를 걸어놓고 재수를 했기때문에 올해 소신 지원을 하네요. 재수를 하시려면 꼭 학교를 걸어두시라고 권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