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idescence [977360]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1-10-14 00: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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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올해 너무 많은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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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시작 전에 이 문장을 읽어보자.


노력의 양을 무지막지하게 늘려야 겨우 결과로 나온다.


성취를 해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정말, 죽을 각오로 노력의 양을 무지막지하게 늘려야 겨우 결과로 나온다. 단순히 수능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내 아버지는 연탄 가스에 소리소문 없이 죽을 뻔한 일이 2번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병원을 보낼 돈이 없어 온갖 민간 요법으로 다행히, 정말 다행히 무탈하게 살아남으셨다. 아직도 그 지독한 가난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하신다. 정말 내 앞에서 내 동생과 닮은 그 울음을 보이신 적이 있다. 나에게 그렇게 큰 거인 같던, 불굴의 ENTJ이던 아빠가. 그러했던 아버지의 유년기. 아버지는 책을 가족의 돈으로 단 하나도 사지 않는 채로, 친구들의 버린 책만을 뒤져 가며 공부하셨다고 했고 실제로 우리 친할머니 집에 가면 모든 책에 익숙치 않은 이름들이 보인다. 그 치욕. 그 치열. 그 끝엔 서울대와 의대가 있었고 아버지는 역시나 서울 갈 돈은 마련 못한다는 말에 지방 의대를 가셨다. 이후 아버지는 내 어머니를 만나셨고, 21세기에 난 태어났다.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난 암산을 남들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잘하는 편이지만 그 사고 속도를 위해 그 '남들'보다 수백 배 많은 시간을 자동차 번호판 보며 살았다. 8살부터 더하고 곱하고 나누고 소인수분해하는 게 단순히 재미있었으니까.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은 내가 왜 폰이 아닌 창밖을 바라보며 수학여행 버스에 5시간 동안 앉아 있었는지 의아해 했을 거다. '저 ㅄ. 폰이나 보면서 게임할 것이지.' 지금 내 초등학교 동창들 중엔 구구단을 모르는 친구들도 있다. 먼 나라 얘기 같겠지만 정말 그렇다.



작년 수능을 통해 내가 배운 건 한 가지. 내가 겪었던 유일한 실패라는 것. 오만해 보이겠지만 난 천성적으로 내 일에 불 같은 성격을 그대로 도입하는지라 그동안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 어떤 것이든 간에. 그 치열한 학교에서도 내가 원하는 경시대회 상이 있다면 어떻게든 참가했다. 수학 경시 대회를 1학년 때 2등했던 것이 너무나도 분해 그날 잠을 못 잤고, 2~3학년 때는 5개의 수학 경시들 중 3개에서 1등을 했다.(어느 학교인지는 비밀)


그렇지만 작년 수능은 완벽한 실패. 275라는 점수가 누군가에겐 원하는 점수일 거고 누군가에겐 코웃음나올 점수겠지만 나에겐 완벽한 실패.


하지만 그 분한 감정 속에서도 의심하지 않은 게 있었으니, 바로 내가 노력한 양과 나의 방만함이 공존했다는 것. 그동안 내가 온 힘을 다해 노력한 수많은 것들 중 유일하게 방만한 감정이 있었고, 유일하게 실패했다는 것. 


수능 망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소보다 2개만 더 틀려도 내 앞으로 100명이 훅 지나간다. 275점으로 많은 대학들을 뒤져 봐도 정말 간신히 대학별 환산 등수로 이과 기준 1200등이 왔다갔다거렸다. 이렇게나 추락했다니....


6평과 9평을 285점 가까이 받던 내가 갑자기 10점이 떨어졌던 2020년 12월 3일, 난 흉작임을 확신했다. 의대 정시가 1000명가량이었으니 말 그대로 운과 가산점, 여론에 의지해야 했다. 의대 지역인재나 국립의 중 펑크날 가능성 있는 곳들, 2과목 가산 대학들을 고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후 입결을 까보니 내가 지원 가능했던 더 높은 대학들도 있었으나 그걸 지방에서 혼자 예측할 수는 없었다. 


난 만족하지 못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싫어졌다. 3달을 우울한 감정으로 보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건 3월.


그 후로 정신없이 재점화해 달렸던 올해는 어떠했는가. 옆자리 경쟁자들에게 처참하게 깨지고 또 깨졌다. 현역 때 학교에서와는 공기의 냄새가 달랐다. 산골의 은행 냄새가 아닌 잉크와 종이향이었다.


누군가는 수능을 빨리 뜨는 게 정답이라고 한다. 당연히 그게 맞다. 그러나 수능은 정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나를 강하게, 그리고 독하게 키웠다. 난 올해의 이 반수를 통해 배운 삶의 태도가 내 앞으로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놓으리라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오만했던 나를 깨기 위해 장마를 견디고 또 견디며, 그 순간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뿌리를 붙들고 있었으니까.  


나는 결코 흐리멍청한 눈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허나 내가 내 작년의 성과에 만족을 해 버리고 대학을 그대로 갔더라면, 올해의 이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도 비참한 존재가 되었겠지. 


그런 면에서 작년의 실패한 나에게 참 감사하다. 내가 바친 건 추가의 1년이지만 그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얻었다. 내가 버린 건 약간의 자존심이지만 그 대가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올해 나의 수능은 실패일지 성공일지, 모르겠지만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이 글을 보실 몇 안 되는 분들(모아보기에서 안 보일 테니 팔로워 1263명만 보는 게 가능하겠지요. 메인도 못 갈 테니.). 전 여러분만 챙기겠습니다, 그냥.


하나만 물을게요. 11월 19일 이 글을 다시 따올리게 될 때, 나의 2021년 방만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아, 내가 실패한 원인이 여기저기에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자신 있으신가요? 분명 실패하면 제 글이 기억에서 튀어나올 겁니다. 그때 다시 여기로 돌아와 다짐하십시오. 치욕의 시간을 겪는 게 낫지, 난 결코 이 실패의 결과를 남들처럼 쉽게 수용하지 않으리라고.



불안한 감정 가지신 분들 많아 보이셔서 제 생각을 읊어 봤습니다. 모아보기에서 금지 처리당하니 차라리 편하네요, 일기장 같고. 일부러 학습자료 칸에 올려둡니다, 어차피 여기 올라올 자료로 공부 제대로 하시는 분들은 지금 이 시기엔 없을 듯하여. 



모두가 실패하고, 모두가 열등감을 맛보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견디셔야 합니다. 


'무지갯빛 미래를 기다리며 장마를 견디는 나무 한 그루. 여러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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