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트 [330920] · MS 2010 · 쪽지

2012-04-23 01:29:29
조회수 17,263

학원강사로 살았는데 이제 너무 힘든일이 닥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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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 현재 서울에서 고등부 수학강사를 하고있는 별볼일 없는 30대의 남자입니다..

뭐 해결책을 바라는 건 아니고 제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그냥 이야기나 들어줬으면 해서 끄적여봐요..




제가 학원일을 한 지가 한 5년정도 됐거든요..


근데 나이가 30대가 넘어가니까 드디어 문제가 터지네요...


원래 제가 무자격 강사거든요... 정확히 학력은 고졸


고졸이 고등부 수학 가르치는 게 좀 웃긴 시츄에이션이긴 한데


제가 재수를 해서 서울대를 갔거든요.. 내가 과에서 소문이 좀 독특하게 나 있어서 과는 말 안 하고.. 그냥 이과쪽






대학 입학하고 두어달 지났을 때였나... 중간고사 보고 바로 다음이었으니..


집에 정장입은 양반들이 들이닥치더니 온갖 세간살이에 빨간 딱지가..


아버지가 중장비 사업, 포크레인하고 덤프트럭 임대도 하고 운영도 하는 사업을 했는데 뭔가 크게 일이 잘못돼서 회사 도산한 거지요


사실 회사가 망한게 준비된 상황도 아니고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이돈저돈 다 끌어서 막다막다 터진거라서.. 


완전 알거지가 됐었죠...


그래도 전까진 잘살진 않았어도 크게 돈 걱정을 하는 입장은 아니었는데..


워낙 급작스러운 일이라 먹고 살만한 돈을 따로 챙겨두지 못한게 늘 한이라고.. 


요즘에도 저한테 미안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시곤 해요


암튼 아버지는 그래도 내 학업은 걱정하지 말라고, 어떻게든 그건 마련해주시겠다고 했는데


말이 그런거지 돈이 어디서 날리도 만무하고..


34평 아파트에서 지은지 20년은 훨씬 넘은 듯한 옛날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첫날밤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건물이 하도 오래된 거라 창문이고 문이고 다 외풍에 덜그럭 덜그럭 소리가 나더군요...


잠도 안오고 그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누워서 이생각 저생각 하고 있자니...


그래도 크게 고생 안 하고 산 내가 공부 핑계로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더군요...



결국 1학기 끝나자 마자 휴학..


집에도 안 알리고 제가 맘대로 아버지 이름 막도장 파서 도장찍고 휴학계를 냈지요..


나중에 말씀드렸는데 그냥 조용히... 담담하게 미안하단 말만 연신하시더라구요...




일단 그래도 학벌이 받쳐주니까 과외만 줄창 해댔죠.. 뭐 할 게 그것밖에 없기도 했구요


그래도 그때 한달에 3~4백은 벌었던거 같네요.. 그걸로 생활비 충당면서 살았죠..


입대도 미루고 진짜 과외만 주구장창..




그렇게 한 1년 반정도 살다가 입대..


군대얘기는 아니니까 군대얘기는 스킵하고~~~






전역하고 나서 한 일년을 또 그렇게 살았어요..


완전 과외기계였는데


아버지도 나름 일은 하셨지만 빚갚기도 빠듯했고 제가 번 돈도 생활비 쓰고나면 수챗구멍에 오수 빨려들어가듯


다 빚가리로 녹아 없어졌고...





일단은 당장 오늘내일 입에 풀칠하는게 제일 급한 일이 되다 보니까 휴학은 정말 기약없이 미뤄지고


과외만 해대다 보니까 무슨 문제집 몇페이지에 무슨 문제가 있고 답이 뭐고~~ 이런것까지 기억이 날 정도가 되더군요..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힘은 들지만 먹고는 살았는데...


근데 인간사 새옹지마란 말도 있지만 호사다마란 말도 있다죠...




그당시 어머니가 식당에서 주방일을 하셨는데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지셔서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게 되셨어요..


그리고 더 암담한 건 제가 공황장애가 왔다는 거..


과외 수업 하다가도 몇 번씩 눈앞이 까매지면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리고


심장 뛰는 소리만 대포소리만하게 들리는 증상이 계속 나타나더이다...



암튼 그렇게 어머니 수술비랑 내 병원비로 깨작 모아놓았던 내 등록금 증발~~~~


원래 이 때 휴학기간 만료로 복학을 했어야 했는데 결국 복학을 못하고 제적이 됐습니다...


정말 그때까지 이악물고 살았는데 이 때는 딱 죽어버리고 싶더라구요....





후에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가 되고 나서 아예 학원강사로 일을 시작했어요...


물론 무자격자지만 가르친 경력도 제법 되고 시강할 때 판서 잘하고 뭣보다 서울대 휴학생이라는 점이 어필이 됐는지 채용해주더군요...


과외할 때보다 수입은 약간 적었지만 일단 안정적이란 것 때문에 하게 됐고


세 학원을 거치면서 이제 경력 5년차가 됐네요...




그치만 결국 재입학한 학교도 매번 등록금만 내고 다니질 않으니까 학교측에서 몇가지 통보를 하더니 최종적으로 제적..

재입학 불가~~



완전히 고졸이 된 거지요...  ㅜ_ㅜ




지금 있는 학원에서 2년 정도 일을 했는데


원장님이 결혼을 하면서 호주로 이민을 간다고 하네요...




적당히 여름방학 끝나는 시점에 마무리할 거고 대충 얘기하는 걸로는 퇴직금 조로 5백정도 챙겨주신다고 하는데


(원래 학원강사는 자영업으로 분류돼서 월급받고 일하기는 하지만 퇴직금이나 4대보험같은 건 없어요..... 5백 주는 것도 고마운거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다른 자리를 알아봐야 되는데 자격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네요...


이나이에 대학생도 아닌 내가 전단지 붙여서 과외를 구할래야 구해질리도 만무하고...


어디가서 서른 훌쩍 넘은 놈이 서울대 한 학기 꼴랑 다녔다고 하면 과연 어느 학원에서 채용해 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군요...




사실 제가 조금 현명했으면 학점이수같은 걸 틈틈히 해서 초대졸 자격이라도 해 놨어야 되는 건데


10년을 넘게 오늘내일만 보고 살다보니 이제 완전 퇴물이 다 됐구나 하는 생각에 담배랑 술만 늘었네요...




아직도 빚은 남았고 나이는 하릴없이 먹었고...




사실 제가 누구 원망하고 남탓하고 그러는 성격은 아닌데


요즘엔 그냥 왜 내가 이렇게 살게 됐는지 참 저주스런 생각이 들때가 한 두 번이 아니네요...



원래 이번에 틈틈히 공부해서 올해 수능을 보려고 했거든요...


한의대 한번 가볼까 해서... 가서 예전처럼 과외하면서 버티면 다녀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뭣보다


이대로 고졸로 살 수는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렇다고 의미도 없는 대학을 다니는 건 뻘짓같기도 해고 형편도 안 되고...


뭐 그게 되면 좋겠는데 학원 문 닫고 나면 내년초까지 뭐먹고 살 지 진짜 너무 걱정되서 괴롭고 힘이 드네요...


어떻게 살았어야 현명한 처신이었을까...


그렇게 돈만 쫓아다니면서 여기까지 온 나한테 남은건 대체 뭘까?





그냥 술한잔 걸치고 들어와서 누구한테라도 지껄여보고 싶었어요...


늦은 밤에 뻘글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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