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수시 논란에 대한 단상
(묻히지 않기 위해 올린 짤은 오마이걸)
0. 저는 경기도의 평범한 일반고를 재학 중인 고3입니다. 비평준화인 저희 지역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학교이지만 전국에서 평균 학업 성취도가 꼴지에 가까운 지역이므로 대략 평균이나 평균에서 약간 떨어지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수능은 11124를 맞았고 지균으로 쓴 서울대는 떨어졌으며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에 합격한 상태입니다. 그간 오르비를 보며 정시 대 수시 논란에 대해 할 말이 많았지만 수능이 남아있어 꾹 참아왔는데, 이제는 거리낄 것도 없으니 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해보려 합니다.
1. 수시생들이 정시생들보다 수능 평균 등급이 낮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학교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1학기 중에 있는 두 번의 시험을 보는데만 해도 각 한 달씩은 투자해야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간 해오던 비교과 활동을 중단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독서 등 각종 비교과 활동과 세특을 챙기는데 한 달 정도는 보통 투자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3월부터 7월까지 5달의 1학기 기간 중 실질적으로 수능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두 달이 채 안됩니다.
2. 수능 공부가 단절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동안 발생하는 감 저하도 큰 문제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수능, 특히 국어는 하루만 안해도 감 저하가 상당합니다. 하물며 한 달의 기간동안 수능 공부를 손에서 놓고 있게 되면 그동안 쌓아온 비문학 읽기 방법이 싸그리 무너집니다. 이 방법을 다시 찾는데만 해도 제 경험상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3. 그렇다고 해서 2학기가 되면 맘놓고 수능 공부를 할 수 있는것도 아닙니다. 선생 바이 선생이지만 2학기가 되어도 자유롭게 수능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시는 선생님은 흔치 않습니다. 앞에서 수업하는걸 씹고 자습하려 해도 1학기 동안 열심히 들었던 수업을 씹고 수능 공부에만 전념한다는 것은 양심상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희 학교는 부장선생님께서 큰 배려를 해주셔서 수능 공부를 해야하는 친구들만 자습실에 모여 자습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사전에 허락을 받지 못한 수업은 들어야 했으며 전국 단위로 보면 저희 학교같은 학교가 많진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4. 지방 일반고(흔히들 말하는 ㅈ반고)와 서울소재 자사고, 특목고, 외고의 내신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제도라는 비판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통념과 다르게 z점수라는 제도 자체는 일반고에 더 유리한 제도는 맞습니다. 하지만 대학마다 따로 변환점수를 사용하여 이러한 내신의 유불리를 보정하고 있으며, 이 기준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습니다. 고교등급제 금지 제도를 들어 대학에서 자사고, 외고, 특목고의 내신과 일반고의 내신을 동일하게 본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미 고려대 등 유명 대학에서 고교등급제 시행 의혹이 발생하는 것을 봤을때 너무 순진한 의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5. 자소서, 면접이 사기라고요? 선생님한테 잘보이려고 아부한다고요? 글쎄요, 지금 제 자소서를 읽어봤지만 적어도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사기쳤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일부러 아부했던 기억도 없고요. 수업 열심히 듣고 발표 열심히 준비해 가는 것을 아부라고 생각한다면야 뭐 할 말은 없습니다.
6. 학종이 부모 재산 따라가는 부자 전형이라는 말도 저는 공감가지 않습니다. 저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으며 저희 어머니께서는 월 약 250을 받고 공장에서 일하십니다. 입시에 관심이 없으셔서 입시에 대한 정보는 저 혼자 얻어야 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학원은 다녀본 적이 없으며 고등학교 기간동안 받은 사교육이란 월 30일 내고 다닌 영어 수학 학원과 70만원짜리 메가패스 가격이 전부입니다. 자소서 면접 컨설팅도 일체 받지 않았으며 제 자소서는 오직 학교 선생님과 선배분, 그리고 제 노력으로 완성되었습니다.
7. 오히려 돈, 부모의 영향으로 편의를 볼 수 있는 부분은 정시가 더 큽니다. 몇달 전인가 무료로 시대인재 모의고사를 받으러 갔을 때 시대인재 홈페이지에서 서울대 의예과 합격생 중 대부분이 단과를 듣던 재종을 다니던 시대인재 수강생이라는 배너를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떨어진 거리도 거리거니와 과목당 30만원에 달하는 단과, 한달에 200만원을 호가하는 재종 가격은 제게 사치입니다. 대출을 끼고서라도 부모님께서 서울에 집을 구할 수 있으셨다면 대한민국에서 일단 평균 이상의 재력을 가지고 계시다고 보시면 됩니다.
8. 제가 평균에서 한참 떨어진 아웃라이어라고 비판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주위에서 좋은 대학 합격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다 저와 같이 동네 학원을 다녔고 부모님께서는 스케쥴 관리 이상의 도움을 주지 않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면접이나 자소서 컨설팅을 받은 친구들도 소수 있었지만 그들의 입시결과가 저랑 유의미하게 차이났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9. 마지막으로 (고작 수능 끝난 고3따리가 대학의 의도를 논한다는 것이 하찮게 보일 순 있겠으나) 대학에서 수시생들을 더 많이 뽑는 것은 전형료 장사의 목적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 수시로 뽑았을때 더 우수하거나 이득이 되는 학생들이 더 많이 들어와서라고 보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고작 몇 년 전형료 땡겨 쓸려고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을 입학시킬 만큼 대학이 근시안적이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시생들이 반수로 탈출하는 비율이 높아서 학점이 낮다고요? 그것 자체가 대학이 정시생들을 꺼릴 근거가 됩니다.
10. 또 학교추전, 지역균형 전형을 통해 전국 단위 경쟁에서는 밀리지만 각 지역에서는 성적이 높은 학생을 뽑는 것도 이러한 방법을 통해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학교 구성원들을 다원화하는 것 자체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경쟁하게 함으로써 학교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맞을겁니다.
3줄요약
수시로
가는것도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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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노력해서 수시제도로 입학했다고 생각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님학교에서 세특 챙기고 내신 열심히 챙기는 아이들이 별로 없는 것 같겠지만, 전국 모든학교로 그런 아이들이 넘쳐납니다. 수시 문제의 본질은 노력을 안하고 입학했다는 것이 아니라 누가 뽑히느냐에 있어서 운이 영향을 정말 많이 미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왜 떨어졌는지 이유도 모릅니다. 지금도 고등학교 때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입학사정관님의 주관으로 불합격의 길을 걷게 된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