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FIC METAPH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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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PINKER | THE STUFF OF THOUGHT
이처럼 사이비 과학에서 쓰이는 엉터리 ‘어낼러지’는 제쳐 두고, 과학에서 바르고 옳게 쓰이는 ‘어낼러지’를 생각할 때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모든 지적 작용 가운데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과학에서마저 ‘어낼러지’가 유용한 까닭은 무엇일까? 힘과 공간은 모든 과학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개념이고, 따라서 이 두 개념에 빗대는 것은 변수와 인과적 변화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에 유용하므로 힘이나 공간과 관련된 메타포는 이해할 수 있으나 좀더 복잡한 메타포의 유용함에 생각이 미치면 기실 오싹해지기까지 한다. 조지 레이코프가 주장하였듯이, 여느 지식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 영역에서도 지식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메타포이다. 메타포는 그 정의상, 객관적 진실에 대충 들어맞을 수는 있으되 딱 들어맞는 법은 아예 없다. 과학에서 메타포가 유용하다는 것은 과학 자체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리차드 보이드 (코넬대, 과학철학)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메타포는 과학계가 세상의 인과적 구조를 언어를 써서 설명할 때 차용하는 여러 장치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용어를 만들어내고 기존의 용어를 수정하는 작업 자체가, 세상에서 중요한 것들, 인과적으로 중요하고 해석하는 데 중요한 것들을 소통할 수 있도록 언어적 카테고리를 정립하는 일인 셈이다.
현재의 영어에서는 이름이 없는 것들을 과학자들은 지속적으로 발견하므로 메타포를 써서 새로이 발견된 것에 이름을 붙인다. 진화학의 ‘선택’ 지질학의 ‘케틀kettle’ 유전학의 ‘고리linkage’ 등등. 그러나 이러한 과학 메타포는 일반에서 쓰이는 뜻과는 다른, 특정한 뜻을 갖게 되므로 메타포의 사슬에 매이는 것은 아니다. (해당 낱말에 또 하나의 뜻이 더해지는 것일 따름이다.) 새로 발견된 현상에 메타포를 써서 이름을 붙인 후, 과학자들은 그 현상을 더욱 깊고 더욱 세밀히 알아가면서 애초 붙였던 메타포에서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군더더기가 되는 부분을 깎아내려 애쓴다. 이처럼 정립된 메타포는 점점 정밀한 뜻을 가진 용어로 진화하고 메타포의 ‘소스source’가 되는 것과 ‘타깃target’이 되는 현상을 아우르는 추상적 개념이 된다. 기실 이것이야말로 과학 언어에 관해서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면인데 일반인들의 오해와 달리, 과학자들은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용어를 정밀하게 정의하지 않고 세상에서 이미 알려진 현상에 붙은 이름을 느슨한 뜻으로 차용한다. 그 새로운 현상에 대해 과학자들이 점점 더 알아갈수록 용어의 뜻도 차츰 정밀해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메타포가 어째서 과학에서마저 유용한가, 어째서 옳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논리전개를 가능케 하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메타포는 그저 ‘이름’일 뿐이지 않은가. ‘쿼크’나 ‘빅뱅’처럼 기억에는 남지만 그리 정보를 전달하지는 못하는 ‘라벨’일 따름 아닌가. 하나의 본질이나 특성으로 이루어진 것, 이를테면 H2O 같은 것은 메타포가 필요하지 않지만, 수많은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들, 안정된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수많은 속성들이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데에는 메타포가 종요롭다고 보이드는 주장한다. 자연 속에서 관찰되는 수없이 다양한 현상들을 관장하는, 복잡한 시스템들에서 작동하는 법칙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법칙들 가운데 어떤 것은 태양계나 원자, 달을 갖고 있는 행성, 막대기에 매달린 공이 죄다 안정된 회전의 패턴에 속하는 까닭을 설명하고, 또 어떤 것은 생태계와 사람의 몸, 경제 시스템 사이의 닮은 점을 설명한다. (예컨대, 생태계와 사람 몸, 경제 시스템에서 모두 외부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내부 기능은 분화되며 자원은 ‘리사이클’된다.) 또 다른 법칙들은, 동물이 혈당을 조절하고 온도조절기가 집 안의 온도를 조절하며 ‘크루즈 컨트롤’이 차의 속도를 조절할 때 쓰는 ‘피드백 루프’를 관장한다.
이러한 법칙들이 존재하는 한, 과학자들은 시스템을 연구해 나가면서 그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법칙들을 발견하게 되고, 같은 법칙들이 작동하는 시스템 가운데 이미 잘 알려진 것에서 언어를 차용하여 새로 발견된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러한 메타포를 통해서 새로 발견된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할 터이다. […] 그러나 어디까지가 메타포이고 어디서부터 메타포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간단한 게 아니다. 예컨대 인지심리학자들이 컴퓨터를 사람 마음(mind)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메타포로서 삼을 뿐인가, 아니면 사람 마음의 작용 가운데 글자 그대로 ‘컴퓨테이션computation’이라는 기능이 있는가, 그러므로 사람 마음과 컴퓨터는 “컴퓨팅 시스템”의 두 가지 예에 불과한가, 하는 문제는 간단히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
COMMENT
과학이 아닌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 (이를테면, moral hazard나 political correctness 따위)는 물론 과학 용어조차도 전혀 새로운 기호를 써서 표현하지 않는 한 (예컨대 그리스 문자를 써서) 메타포일 따름이다. 애초 촘스키가 deep structure라는 말을 썼다가 “deep”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바람에 요새는 d-structure라고 바꿔서 쓰고 있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존의 언어에서 쓰이는 말을 정밀한 과학 개념을 표현하는 메타포로서 쓰면, 그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사이에서, 아니 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오용될 공산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것을 번역할 때, 일본인들이 자기들이 쓰는 한자어로 옮긴 것을 발음만 우리 식으로 해서 쓰면 지식의 토대 자체가 흔들거릴 공산마저 있다. (moral hazard를 ‘도덕적 해이’라고 하고 political correctness를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이야 별로 중요한 게 아닐 수 있으니까 대수롭지 않을지 모르지만) . 얼마 전 게시판에서 링크한, 이광근 교수의 글의 일부분을 다시 옮겨보면,
모국어로 공부하기란 어떤 걸까? 예를 들어 만유인력, universal gravity라는 용어를 보자. 아마도 대다수는 ‘만유’를 소리로만 건성으로 지나칠 것이다. 영어(중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느낌을 살려 ‘universal gravity’(‘완요우인리’)를 우리식으로 읽으면 ‘만유인력’이 아니라 ‘어디나 있는 끄는 힘’일 것이다. 쉬운 모국어가 아니라면 소리로만 이해 없이 주입되는 전문용어일 뿐이다.
라고 하고 있지만 ‘만유인력’을 “어디나 있는 끄는 힘”이라고 옮기는 것도, 용어의 특성인 간결함이 없다는 것뿐 아니라 영어에서의 universal이라는 낱말을 오롯하게 표현하는 게 아니다. universal은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곧 omnipresent라는 뜻과 더불어서 universe의 형용사 곧 “of the universe”라는 뜻을 갖고 있다. universal이라는 낱말에서 universality라는 명사형을 도출하는 것은 영어에서는 당연한 일이 된다. 그러므로 ‘만유인력’을 설명하는 전형적인,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But Newton’s law of universal gravitation extends gravity beyond earth. Newton’s law of universal gravitation is about the universality of gravity. Newton’s place in the Gravity Hall of Fame is not due to his discovery of gravity, but rather due to his discovery that gravitation is universal. ALL objects attract each other with a force of gravitational attraction. Gravity is universal.”
“universality, universal, universe, all”과 같은 낱말은 초등학생마저도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고 “universal gravity”에서 “Gravity is universal.”라는 문장으로 이어지는 데에도 전혀 무리가 없게 된다. (‘만유인력’에서 “인력은 만유이다.”라는 문장을 억지로 만들 수 있으나, 우리나라 초등학생이 자연스레 그럴 수 없고, 게다가 ‘만유이다’가 무슨 뜻인지를 아는 데에도 애를 먹게 된다.)
더군다나, universal이 “of the universe”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른바 ‘멀티버스multiverse’ 가설에서는 더 이상 유일하다는 뜻의 “the universe”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우주, 즉 “the universe we belong to”라는 뜻에서만 universe 앞에 the를 붙일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과 함께 “universal gravity”라는 것이 다른 우주에서도 적용되나, 하는 의문으로 생각의 갈래가 자연스레 뻗는다.)
이 모든 생각의 갈래는 “언어놀이”(word play)에서 비롯된다. 비록 수학이라는 언어가 있어서 영어는 못하면서도 미국 대학의 과학이나 공학 분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지식이 뻗어나가는 데에는 수학뿐 아니라 자연언어가 차지하는 몫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른바 ‘용어’의 번역에는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셈이다. (낱말이나 표현은 그 자체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문장에서 ‘활용’하므로 활용까지도 고려해서 생각을 깊이 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와 더불어서 낱말에서는 으레 갈래가 지므로 그 낱말에서 뻗는 갈랫말들이 어떤 것인가도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정확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말을 골라서 배우는 사람은 물론 일반 사람들한테까지도 대충의 의미를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현대 학문의 토대가 마련된 우리나라의 “경우” 이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내가 앞 문장에서 “경우”라고 따옴표를 쳐서 강조한 까닭은 애초 우리말에서 ‘경우’는 일본어의 場合를 번역할 때 쓰는 말이 아니라 “사리나 도리, 또는 그것을 가리키는 힘”이라는 뜻이었는데 요새는 일본어 식 용법이 낱말의 줏대가 되던 뜻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하게 되어서 모든 게 ‘경우’로 수렴되는 현상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경우’를 꼭 써야할 문장은 아예 없다. 영어로 글을 쓸 때도 ‘경우’에 해당하는 “in the event(case) that (of)라는 표현은 반드시 피해야 할 표현으로서, 거의 모든 글짓기 책에서 경고하고 있다. 일본어에서도 메이지 유신 이후 번역체가 말글살이에서 줏대가 되면서 ~の場合라는 표현이 난무하게 되었는데 ─ 하루키의 1Q84 이북에서 검색을 해보니 쉰 일곱 번 쓰고 있다.─ 이 말을 남용하면 문장이 유치하고 지저분해질 뿐 아니라 뜻까지 모호해진다.) 한상범은 “내가 겪은 격동 60년”에서 다음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적고 있다.
민사소송법의 대가로 통했고 대학 교수와 대법원장을 역임한 이아무개는 동경대학 교수 가네코 하지매의 책을 번역하면서, 우리말로 ‘경우’라는 뜻의 일본말인 ‘장합’(場合)을 그대로 한자 ‘장합’(場合)이라 옮겨 수험생들이 ‘장합’이란 법률용어가 무엇인지 몰라 쩔쩔매게 했다.
여기서 대법원장을 역임한 민소법의 대가 이아무개는 이영섭인데, 이러한 예가 드문 게 아니라 지천으로 널려 있고, 이 언어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학계의 꼬락서니 때문에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이는, 이를테면 지적 허영에 물든 사람들이 끄떡하면 아무 데나 “미필적 고의” 어쩌고 하면서 갖다 붙이면서 일상 언어 생활까지 차츰 망가뜨리게 된다. (라틴어 Dolus eventualis를 직역한 것이 未必の故意이고─”아직 딱부러지게 정해지지 않은”이라는 뜻의 未だ必ずしも確定していない에서 한자로 ‘미’와 ‘필’만 따서 만든 말이므로 일본어에서는 말이 된다.─ 이것을 の만 ‘적’으로 바꾼 게 이른바 ‘미필적 고의’라는 표현인데 이런 같잖은 말은 그저 고리타분한 법조계에서나 쓰라고 하고 일반 언어생활에서까지 쓸 까닭이 없다. 애초 로마법 개념에서는 ‘고의’ Dolus를directus와 eventualis로 나누었고 독일법에서 이를 직역해서 Eventualvorsatz라고 했었으나 이는 좀더 현대적인 bedingter Vorsatz로 바뀐다. 영미법에서는 이와 비슷한 개념은 reckless negligence/disregard쯤 되지만 tort와 형법에서 여러 표현으로 다르게 쓰인다. 이 ‘미필적 고의’를 언급한 까닭은, 같은 일본말이라고 하더라도 ‘고의’는 평범한 한자어이므로 법률용어나 일상 언어에서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없으나, ‘미필적’이라는 순 일본식 표현을 일상 언어에서는 말할 나위 없고 법률용어로서도 받아들이는 것은 우습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본 법전과 법학서를 토씨만 바꾸어 옮긴 한국 법학계는 마땅히 낯을 들지 못할 만큼 부끄러워해야 함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서, 어서 공부의 토대가 되는 말을 우리말로 바꿀 생각도 않고 일본말을 우리 식으로 발음하면서 그게 대단한 것이나 되는 양 거들먹거린다. 프왕카레는 영국의 식자들이 앵글로색슨 낱말 (순 영어)를 기피하고 프랑스어에서 온 낱말만 쓰는 것을 풍자하면서 ‘영국 지식인들은 다 프랑스어를 잘한다. 다만, 발음이 엉망일 뿐이다.’고 했는데 일본인들도 우리 식자층을 가리켜 같은 손가락질을 하지는 않을는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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