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산 복권이 당첨되어 수령했는데 횡령죄라고 합니다.
"제가 복권을 사서 친구와 같이 긁었는데 친구가 긁은 복권이 10억원에 당첨됐어요. 10억원을 수령해서 수고비로 친구에게 1억원을 줬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에서는 제가 횡령이라네요. 억울합니다"
같이 긁은 당첨 복권, 안 나누면 횡령?
음악만이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은 아니다. 공상(空想)도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일은 어릴 적 걸었던 오솔길을 걷는 일과 같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편집에 희생당하면서도 발버둥치는 그 모습에 이입했다. 나는 래퍼도 되어보고, 가수도 되어봤다.
그러나 저런 공상은 품이 많이 든다. 불편하기도 하다. 성공은 실패와 땀으로 이루어질진대 그 땀이 심사위원의 독설과 조소에 소비되는 진땀은 아닐 것이다. 비정한 질문을 퍼붓고 그에 당황하는 우리 같은 참가자들의 일상은 결국 위로에서 연민으로 변질되었고 ‘엄친아’ 몇을 배출하는 것을 끝으로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폐지되었다.
이런 복잡한 생각 없이 복권은 아주 간단한 공상으로 안내한다. 언젠가 20억 원짜리 즉석복권을 앞에 두고 친구가 사온 복권을 셋이 같이 긁었다. 긁기 전 모두가 돈 따위 괘념치 않는 진정한 우정을 과시했다. “내가 당첨되면 너희 5억씩 줄게”부터 “야 난 1억만 있으면 돼. 너 학비 걱정했는데 보태준다. 진심!”이따위 말들이 오갔다.
복권은 천 원조차 당첨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우리끼리의 공상은 계속됐다. 10억 원은 일단 부모님께 드리고 시골에 계신 고모, 이모부, 삼촌에게 각 5천만 원씩 보내드린다. 그래도 5억이 남는데 사고 싶은 차를 사고, 스피커를 산다. 유치하지만 거액 당첨에 한 번 제대로 이입을 해 보면, 의외로 재미가 있다. 우리 삶의 구조가 항상 제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묘한 해방감도 들었다. 시인 나르테 카이는 “당신이 지갑을 여는 사람을 말해 달라. 당신이 얼마나 사랑받는지 알 수 있다”고 장담한 바 있다.
A는 다방에 가서 다방주인 B와 인사를 나누고 평소 귀여워했던 종업원 C, D를 시켜 복권4장을 사오게 했다. 마음씨 좋은 A는 모두 참여하게 하여 각 1장을 긁었지만 모두 꽝이었고 다방주인 B와 종업원 C만이 각 천원에 당첨이 됐다. 이를 다시 복권 4장으로 바꿔 각자 1장씩 긁었는데 또 B, C만이 당첨이 됐다. 금액은 각 2,000만원!
이 때 종업원 C는 다른 손님이 차를 주문하자 복권을 놓고 자리를 떴다. 이 때다 싶어 A는 자신이 산 것이니 일단 당첨금을 수령해오겠다는 핑계로 B로부터 복권을 받았고 역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C의 당첨 복권을 갖고 자리를 떴다. 그러나 이후 수고비로 100만원만 건넸을 뿐 더는 주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C는 100만원 수령을 거부하며 A를 고소하였다. 종업원 D는 잘 해결되기만을 바랐다.
1심은 A를 나무랐다. C가 복권을 긁었고 확인한 것도 C였으므로 복권의 당첨금을 반환하는 것을 거부한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횡령죄를 적용하였다.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2심의 판단은 달랐다. 먼저 2,000만원의 당첨복권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서빙을 하러 가는 것이 이해가지 않는다 했다. 또 첫 번째 긁은 복권이 1,000원에 당첨되었을 때 즉시 A에게 주었던 것도 이상하다 했다. 자신의 복권을 갖고 간 A에게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도 고려했다. 결국, 2심의 법관들은 법률전문가인 자신들에게도 복권당첨금이 누구 소유인지 분명하지 않으므로 횡령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A는 무죄.
3심의 판단은 또 달랐다. 재미삼아 한 장씩 나누어 당첨 여부를 확인했고 2,000원으로 교환한 복권 4장을 다시 1장씩 골라잡아 확인한 것을 감안하면, 복권이 당첨될 경우 이를 N분의 1로 하자는 묵시적인 합의가 있다고 봤다. 돈을 A가 내줬다 해서 나머지 B, C, D를 단지 그 당첨 여부만을 확인하여주는 아바타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3심은 복권 당첨금은 실제 당첨되었던 B와 C, 그리고 돈을 낸 A뿐 아니라 별 관련 없어 보이는 D에게까지 모두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봤다. A는 유죄. 종업원 D는 잘 해결되었다.
파블로 피카소는 행동이야말로 모든 성공의 핵심(action is the foundational key to all success)임을 말하며 행동 없는 창의력은 단지 공상에 불과함을 강조했다. 그런데 가끔 공상은 공상으로 남는 것도 좋은 듯하다.
같이 긁은 당첨 복권, 안 나누면 횡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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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을 산 사람이 주인이고 같이 긁은 사람은 아무런 권리가 없을 줄알았는데 그런건 또 아니군요...
4명서 같이 긁은것이 돈을 나눠가지겠다는 암묵적 동의로 생각 될수 있다는게 흥미롭네요
다음글도 기다릴게요!
좀 더 법리적으로 풀이하면, 대법원이 주목한 점은 각자 '아무거나' 골라 1장씩 긁었고 거기서 또 당첨된 2천원권 복권을 4장으로 교환해 다시 '아무거나' 1장씩 골라 긁은 행위입니다.
이를 대법원은 "만약 어느 누구의 복권이 당첨되더라도 N분의1 한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복권을 샀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은 단지 물주를 위해 복권 긁어주는 노동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수긍이 가지는 않습니다만, 관련 사례에서 판례는 이렇게 자리잡았습니다.
D가 제일이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