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물용 [847641] · MS 2018 · 쪽지

2019-04-13 14: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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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주의적 사고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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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고 흠칫했을 학생들이 많겠지만, 단지 용어가 생소하고 어려워보일 뿐 '환원주의' 자체는 평소 인간들이 자주 쓰는 사고방식입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환원주의'란 쉽게 말해서, 복잡하고 큰 사건이나 결과의 원인을 하나하나 잘게 쪼개서 관찰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글을 쓰고 남에게 설명하는 입장으로서,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표현해서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항상 글을 씁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의 성향은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에 가깝다고 여깁니다.


 한번 다양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1+1=2 라는 식은 원인도 단순하고 결과도 간단합니다. 굳이 이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 과정을 면밀하고 꼼꼼히 살필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통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나, 고차원적인 결과들은 아주 복합적이고, 다양한 원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간단한 결과의 경우 인간의 직관력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크거나 복잡한 사건의 경우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한국의 학생들은 놀랍게도 수학1 에서부터 배우고 있었습니다. 바로 무한급수입니다.



 인간은 이 식을 직관적으로 한번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장 어떤 규칙성을 가지며 더해지는 숫자들을 무한히 더했을 때, 우리는 그 결과를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식은 인간이 아닌 신만이 곧장 이해할 수 있다고 제 오랜 수학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걸 이해하기 위해 뭘 개발했냐면





 이것을 개발했습니다. 즉 쪼갠 것이죠. 먼저 리미트를 밖으로 빼내고, 시그마의 최대 항 개수를 N이라고 정해놓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우선 이 리미트를 뺀, 시그마에 대해서 고민해봅니다. an이라는 항들을 N번까지 합하면 어떤 규칙성을 가지는가? 어떤 형태를 보이는가? 이것을 먼저 찾아낸 이후, 그 결과식의 N에다가 무한을 대입시켜보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공부하는 무한급수에 대한 정의를 보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무한급수는 부분합의 극한값이다' 즉, 우리는 무한까지 더한 결과를 곧장 이해하거나 계산할 수 없으니, 먼저 부분합을 구해서 양상이나 규칙성을 표현해두고, 그 값에다가 극한을 취하자는 개념입니다.


한꺼번에 이해하기 어려우니, 따로따로 분리시켜놓고 각각을 이해한 다음 결과를 추론하자가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의 장점은, 복잡한 현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짜증나는 수학을 예시로 들었으니, 이제는 좀 편안한 일상에 관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A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이 학생은 모든 과목에서 높은, 우수한 성적을 받습니다. 이것은 결과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 학생이 이런 결과를 얻게되었냐를 찾는 것이 원인을 찾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한번 A 학생을 쪼개보는 것입니다. 자습시간에는 어떻게 공부하나? 수업시간에는 무엇을 하나? 자기가 모르는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컨디션 관리는 평소 어떻게 했나? 시험시간 중에는 어떻게 빠르게 풀어나가나? 이것을 위해서 평소 무엇을 연습하는가? 하루에 얼마동안 공부하는가? 평소에 하는 행동과 습관들을 잘게 쪼개고 나누어서 각각에 대해서 관찰하는 것입니다.


 성적이 높다는 것은 아주 간단명료한 결과이지만, 이런 결과를 위해서 정말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단순히 공부를 많이,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성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 하더라도, 시험 시간에 대한 전략을 잘못 짜면 성적이 떨어질 것입니다. 자습때는 정말 열심히 하지만, 수업시간에는 항상 졸기만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 학생도 성적을 올리기가 힘들 것입니다.


 성적이 높다 라는 결과는 고차원적인 결과입니다. 정말 오랜시간 무수한 경험과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서 성적이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필자 또한 잘하는 학생들을 오래 관찰해보았고, 자잘한 습관이나 방식을 하나하나 따라해봄으로써 본인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번 전쟁사 칼럼의 '외교전'에서도(https://orbi.kr/00021679447) 비슷한 말을 했었습니다. 외교적으로 큰 사건은 여러가지 상황과 정세,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벌어진 일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은, 그것을 물밑에서부터 조율해온 숨은 영웅들,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인간적인 정서와 성격, 이에 대해서 각 국의 국민들이 가지는 감정,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와 군사적 긴장감, 심지어 회담이 개최된 장소가 주는 느낌까지. 정말 수도없이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양상은 국어 지문에서도 자주 출제됩니다. 얼마전 수능에서 학생들의 멘탈의 박살냈던 '오버슈팅' 지문이 좋은 예시입니다. 오버슈팅이라는 한 결과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때 논란의 중심이었던 2011 수능 채권지문의 채권가격 문제. 수능 국어의 경제학 지문에서는 다양한 요소들의 복합적 작용이 자주 등장한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말은 의미가 부족하거나 없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을 올려야 합니다'라는 말 따위에 무슨 의미나 큰 교훈이 있겠습니까.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아무 의미없는 공허한 위침일 뿐입니다. 이 말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열심히 하고, '얼마나' 열심히 하고, '공부'가 과연 무엇인지 등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해보라'고 자주 말씀드립니다. 구체적으로 이번에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만 다음에 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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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준히 묵직하게? · 870828 · 19/04/13 21:57 · MS 2019

    구체적으로 자신의 원인을 찾기위해 노력중입니다.

    새롭게 저만의 루틴을 만들다 보니 여러군데 구멍이 난게 보이네요. 하나하나씩 채워지고 있지만 어느새 돌아보면 뚫려있곤합니다.

    오늘도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