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과 [590251] · MS 2017 · 쪽지

2017-12-23 03: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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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생이 예비 N수생 여러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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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과 님의 2018학년도 수능 성적표

구분 표점
한국사 - - 1
국어 126 93 2
수학 나 132 99 1
영어 - - 1
한국지리 69 99 1
경제 62 82 3
실지원 학과
대학 학과 점수 순위
나군 연세대 경제학부 741.087 1

2018학년도 대입 수학능력검정평가,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시험이었습니다. 수능 전날 지진으로 인해 시험이 연기되질 않나, 역대급 수능 한파가 밀어닥치질 않나, 1교시 국어가 너무 어려워서 시험장을 이탈하는 학생들이 속출하질 않나...

부끄럽지만, 저의 수능은 올해로 세 번째였습니다. 현역 때는 놀기 바빠 수능을 망해 재수를 결심했고, 재수 때는 수능은 잘 나왔으나 원서를 잘못 넣어서 삼수를 하게 되었어요. 별의 별 이유로 다 대입을 실패하고 삼수 생활을 했던, 나름 베테랑인 저에게도 이번 시험은 참 어려운 시험이었어요. 문제 자체의 난이도도 난이도였지만, 가장 저를 힘들게 한 건 무엇보다 일주일 연기된 수능이었어요.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수험생 입장에선 맥이 빠졌던 건 사실이니까요. 특히나 포항의 학생들에게는, 수능 연기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갔을지 저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수를 결심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당장에 저만 해도 목표로 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수능의 트라우마 때문에 더 이상 수능에 응시하는 건 생각하기도 싫거든요. 그럼에도, 제 주변에도 벌써 재수나 삼수를 하겠다는 학생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정말 진심을 다해 존경해요.


삼수를 해서 대학교에 입학하셨던 아버지께서 저에게 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재수생 앞에서 인생을 논하지 말고, 삼수생 앞에서 철학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재수와 삼수 생활동안 인생과 철학에 대해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수능에 한 번 더 도전한다는 것이 그만큼 심적으로 힘들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미천한 저의 경험으로 여러분의 결정을 재단할 권리는 저에게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선택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재수를 결심하셨다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많이 힘드실 거예요. 대학을 먼저 다니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억울해지기도 하고, 감기에라도 걸려서 조용한 강의실에서 기침을 하고 있자면 종종 서글퍼질 수도 있어요. 좋아하는 가수들의 콘서트 소식이라도 있으면 그런 감정은 배가 될 것이고요. 때때로 공부에 잘 집중이 되지 않을 때도 있을 테고, 그런 자신을 보며 불안해지기도 할 거예요. 저에게 역시 이런 감정들은 해묵은 상처로 남아 있어요.


사람들은 조개에 상처가 나야 진주가 된다며, 사람의 상처의 고통을 너무 쉽게 미화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진주는 조개에게 하나의 딱지일 뿐, 바다의 보배도, 값비싼 보석도 아닐 거예요. 저는 재수생으로서 겪는 상처도, (물론 크게 본다면 하나의 보배가 될 수야 있겠지만) 상처 그 자체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끔씩은 선생님들이 말씀하실 수도 있어요. “이 경험들이 나중에는 훌륭한 자산이 될 거다”라고. 물론 그 분들 입장에서는 보배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만큼은 그런 말이 큰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고자 결심한 이유는,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여러분에게 가장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에요. 위에서도 많이 말했지만, 재수, 혹은 N수라는 건 여러모로 아주 힘든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여러분들이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저는 헤아릴 수 없어요. 오히려 글러먹은 사회의 피해자라면 피해자였지, 여러분은 결코 ‘죄수생’이 아니에요. 부모님의 짐이 된다거나 하는 일로도 죄책감을 가지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재수의 상처를 미화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고통이 미화될 때 그 비극성은 희미해진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고통이 크게 보면 추억이 될 거라는,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말씀을 드리기는 싫어요. 제가 가장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이 겪을 고통은 분명 쓰라릴 거예요. 때로는 그 무게에 좌절하실 수도 있어요. 그래도,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아니 이 나라의 모든 학생들이, 저열한 사회의 희생양이 되지 않길 바라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저는 잠깐 먼저 가서 노력하고 있을게요. 정말로,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진심을 다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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