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박하고불안한삼수새 [766065] · MS 2017 · 쪽지

2017-12-18 21:45:28
조회수 10,005

이호철 - 나상 삼수생 ver. 수정본

게시글 주소: https://image.orbi.kr/00014683202

형은 또 울었다. 모의고사가 끝나고 나서도 어머니를 불러 가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동생도 형 곁에서 남모르게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울었다.

그저 형의 설움과 울음을 따라 울 뿐이었다. 동생도 이렇게 울면서 어쩐지 마음이 조금 흐뭇했다.

6월 모의고사는 정말 어려웠다.

어느새 강대엔 성적표가 흩날리고 있었다.

형은 울음을 그치고 불쑥,

“야하, 성적표가 나온다, 성적표가, 성적표가. 6월이 다 끝나가네.”

물론 조교들의 감시가 심하니까 동생의 귀에다 입을 대지도 않고 이렇게 혼잣소리만 지껄였다.

“저것 봐, 저기 저기, 에에이, 모두 공부만 허구 있네.”

동생의 허리를 쿡쿡 찌르기만 하면서…….

어느새 6월도 끝났다. 하루하루는 수월히도 저물어 갔고 하늘은 변함없이 푸르렀을 뿐이었다.

재수생도 N수생도 공부하고 있었다.

빌보드의 점수를 바라보는 형의 얼굴에는 천진한 애들 같은 선망의 표정이 어려 있곤 했다.

날로 날로 풀이 죽어 갔다.

어느 날 저녁 자습시간이었다. 조교들도 모두 퇴근했을 무렵, 형은 또 동생의 귀에다 입을 대고, 이즘에 와선 늘 그렇듯 별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 새끼 생각이 난다. 성적이 꽤 좋았댔이야이.”

“…….”

“난 원래 수학에 담증이 있는데이. 너두 알잖니. 요새 좀 이상한 것 같다야.”

“…….”

동생은 놀라 돌아다보았다. 여느 떄 없이 형은 쓸쓸하게 웃으면서 두 팔로 동생의 어깨를 천천히 그러안으면서,

“동생아. 야하, 흠썩은 무섭다.”

“…….”

“저 말이다, 엄만 날 늘 불쌍히 여겼댔이야, 잉. 야, 동생아, 동생아, 등급컷이 좀 이상헌 것 같다야이.”

“…….”

동생의 눈에선 다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형은 별안간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동생의 얼굴을 멀끔히 마주쳐다보더니,

“왜 우니, 왜 울어, 왜, 왜. 어서 그치지 못하겠니.”

하면서도 도리어 제 편에서 또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튿날, 형의 백분위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혼잣소리도 풀이 없었다.

“그만큼 공부했음 무던히도 공부했음서두. 에에이, 이젠 좀 그만 공부하지덜, 무던히 공부했지만서두.”

하고는 주위의 강대생들을 흘끔 곁눈질 해 보았다.

강대생들은 물론 자기 공부하느라 바빴다.


바뀐 조교들은 꽤나 사나운 패들이었다.

그날 저녁 자습시간, 형은 동생을 향해 쓸쓸하게 웃기만 한다.

“동생아, 너 서울대에 가거든 말이다, 서울대에 가거든.…”

하고는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벌쭉 웃으면서,

“히히, 내가 무슨 소릴 허니, 네가 서울대에 갈 땐 나두 갈 텐데, 안 그러니? 내가 정신이 빠졌어.”

한참 뒤엔 또 동생의 어깨를 그러안으면서,

“야, 동생아!”

동생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쳐다보기만 했다.

형의 성적표에선 백분위가 새었다. 바늘구멍같이 좁은 정시판 대학문이 습기 어린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히곤 하였다. 문이 열릴 때마다 대학생들의 모습이 부유스름하게 뻗었다.

동생의 눈에선 또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형은 또 성을 벌컥 내며,

“왜 우니, 왜? 흐흐흐.”

하고 제 편에서 더더 울었다.


몇 달이 지날 수록 형의 백분위는 더 떨어졌다. 자습시간 교실 안에서도 별로 혼자 소릴 지껄이지 않았다.

평소의 형답지 않게 꽤나 조심스런 낯빛이었다.

둘레를 두번거리며 조교들의 눈치를 흘끔거리기만 했다. 이젠 자습시간에도 동생의 귀에다 대고 이것저것 지껄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강대 밖 대학생들이 술 마시는 소리 같은 것에는 여전히 흠칫흠칫 놀라곤 했다. 동생은 참다못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형은 왜 우느냐고 화를 내지도 않고 울음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동생은 이런 형이 서러워 더더 흐느꼈다.

그날, 강대엔 9월 모의고사 빌보드가 붙었다.


형은 불현듯 동생의 귀에다 입을 댔다.

“너 무슨 일이 생겨두 우리 형이 삼수생이라구 글지 마라, 어엉?”

여느 때 답지 않게 숙성한 사람 같은 억양이었다.

“울지두 말구 모르는 체만 해, 꼭.”

동생은 부러 큰 소리로,

“야하, 빌보드 붙었다.”

형이 지껄일 소리를 자기가 지금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형은 그저 꾹하니 굳은 표정이였다.

동생은 안타까워 또 울었다. 형을 그러안고 귀에다 입을 대고,

“형아, 형아, 정신 차려.”


수능날, 아침해가 뜨고 어느 수능 시험장 교실에 다다르자, 형은 동생의 허벅다리를 쿡 찌르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형의 신분증을 주의해 보아 오던 감독관이 뒤에서 싸대기를 휘둘러 갈겼다.

형은 국어 문제를 풀다가 OMR카드 위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감독관은 OMR 카드를 찢어버리면서,

“삼수생이 대학에 가겠다구 뻐득대? 뻐득대길.”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