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수정됨) · 쪽지

2006-02-17 01: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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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이상이 대학에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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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글은, 언제부턴가 꼭 쓰고 싶었던, 오르비에서 수적으로 소수가 될 진 모르겠으나
입시에 대한 애환과 열망만큼은 그 어떤 다수에도 뒤지지 않는, 그러한 사람들(아울러 내가 진심으로 응원하고 손잡아주고픈)에 대한 나의  조그마한 배려차원의 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형 오빠 심정에서 쓰고 싶은 마음에 반말로 된 것 이해 바란다. 혹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알아서 filter...)

오랜만에 글을 써 본다. 며칠 만인지..

뭐, 아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대학에 늦게 들어 왔다.
남들보다 늦게.. 1~2년씩 이렇게 늦게 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뭐, 자세히 설명은 안 하겠지만 나는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정말 아주 운이 없는 경우\'
에 걸린 케이스였고 (흔히들 \'야 수능볼 때 빈혈로 쓰러지면 진짜 미치겠다\'라고들
가정법으로 얘기하지 않던가) 그 과정에서 어찌어찌 다시금 길을 찾아
대학에 들어 왔다. 일단 나는 이 부분에 관련한 얘기는 하려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차치하고.

그래, 너희들은 늦었다. 늦게 왔다. 현역으로 대학? 아주 좋다 이상적이다.
재수? 그래 거기까지 좋다. 거기까지만 해도 \'재수할만하다\' 심하게 말하면
\'오히려 현역으로 간 것보다 낫다\'는 말까지 나올 수 있다. 재수라는 시간이
버리는 것만은 아니니까.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또 나름의 고뇌의 시간을 겪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삼수이상부터는.. 일단 뭔가 다르다. 좀 더 빨리 갔어야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 수험생활의 시간이 의미있는 것이든 간에)
다시금 기회가 온다면 좀 더 빨리 가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삼수이상을 했다는 사실은
평소같으면 목표하던 대학에 붙으면 일단 그걸로 세상에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낌에도
일단 뒤로하고, \'내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홀로, 고독히 해야 한다.

여러 상담게시판에, 물어도 보고, 말은 어떻게 해야 되요, 호칭은? 동아리는 가입시켜주나요
라고들 글을 올려보고, 또 괜찮다는 말에 위안을 삼아 보지만 도무지 답이 안 나온다.
아니, 답을 도출해내도 사실 쉽진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고, 나도 늦게 들어갔으니까
하는 말인데, 아무래도 2살차 이상 형, 오빠, 누나, 언니들은 친구처럼 지내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친구같이 지내기는 사실 힘들다. 여기선 두 부류가 갈릴 수 있겠다. 정말, 친구처럼 지내고
말도 놓고 하고 싶은데 현역애들쪽이 부담스러워할까봐 고민하는 경우와,
나이서열은 확실히 하는 걸 좋아하는데 대학에서 동기란 이름으로 애들이 말을 놓으면 어쩌지?
나보다 나이낮은 선배는? 하며 고민하는 경우이다.

한 번 답을 내 보자.

삼수이상까지 했는데 뭐가 두려운가? 그냥 학교생활을 하면 되는거다. 물흐르는대로 하면 된다.

전자의 경우, (정말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경우) 격의없이 하면 된다. 비록 애들이 호칭은 부를지라도 말 놓으라고 하고, 가능한한 열심히 참여하고 편하게 대해주면 된다. 자기가 의식하면 안 된다. 자기가 의식을 안 해야 아이들도 의식 안 하고, 그렇게 편하게 가는거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그리고 이런 경우, 보통의 \'대세\'를 따르는 것이기에 학교생활에 별로 어려움은 없다. 이런 애들의
경우 자기와 나이 같은 선배에게 꾸벅꾸벅 존대하고 선배대접하며 그 안에서 나름의 자기 위치를
찾는다. 그게 만족스럽다면, 그걸로 된거다.

문제의 경우가.. 바로 후자의 경우이다. 이 경우 약간의 마찰을 불러올 수 있다.

일단 개인적인 경우를 들어보자.
적어도 난, 중고등학교 때 꽤나 선후배관계를 단단하게 (소위 빡세게)해 왔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애들이라도 보면 무조건 나에게 달려와 인사했고 일단 내가 지나가면
후배들은 무조건 (그게 장초든 돗대든) 얼른 담배 짓이기고 인사하고 내가 지나갈 때까지
서 있었다. 그래, 이런게 좋다 나쁘다 이걸 말할게 아니라 나와 내 친구들은 이런 문화에 익숙해
있었고 (우린 그 동생들에게 확실히 형으로써 많은 걸 도와줬다. 그건 우리와 선배들의 관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1살이라도 어리면 학번상관없이 무조건 동생이었다.

그래, 이제 학교 가서 나보다 학번 높은 선배를 만나게 되었지. 여러 얘기 꺼내면 골치 아프니 이번
대학얘기만 해 보자면.. 결과적으로, 난 O.T를 가서도 그랬고, 학교 생활에서도 초창기에는
학번 이런 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배들과 만날 기회도 있었는데
같이 술 먹고 얘기하다 보니까.. 어느새 내가 형이 되 있었고 그네들은 동생이 되 있었다.

학교 생활에 있어서도, 내가 선배들인 그놈들을 불러다 술한잔 사주며 여러 인생얘기도 해 주었고
그들도 그들대로 나한테 깎듯이 하며 돈독한 관계를 쌓아왔다.

그래, 이제 정말 이상적으로 보이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당연히 나 역시 사회현상에 관심많고
우리나라의 관습적 시스템에 주목하는 대학생으로써, 나의, 우리의 이러한 행동에 당연히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생기더라. 일부 나보다 나이어린 선배들이 그랬고, 그리고 그 중심엔, 나보다는 밥을 몇천그릇은 더 먹었을, 95~96학번들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주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그 선배들은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여긴 여기 룰이
있는데 네가 온 후로 그것이 좀 뒤바뀐 것 같다.. 고 얘기를 해 주었다. 물론 그 선배들 입장에선 조금 기분이 나빴을 법 하다.

곰곰히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 얘기도 들어 보았다. 친구들은 재수를 했어도
동기들과 아예 말을 트고 (물론 한살 위의 선배와도 말을 트긴 하지만) 그것에 신경 안 쓴다는 말에
내가 괜히 쓸데없는데 에너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남은 문제는, 내가 본래 갖고있던 나의 룰과, 내가 속해있는 사회집단의 룰의 접점을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접점은 굳이 내가 설명 안 해도 되리라 믿는다.

그래, 어차피 자신이 한 사회에체제에 \'소수\'로서 편입되는거라면 일단 그만한 리스크는 감수해야 한다. 어찌 아무 불이익이 없을 수 있겠나. 하지만, 자신의 룰과 그 사회집단의 룰에 대한 접점을 찾는 데에 노력을 쏟아부으면, 대학생활이란 또 다른 의외의 측면으로 재미있을 수 있다.

난 현역으로도 대학을 다녀봤지만 이런 재미들도 느낀다. 내가 수업늦을 때, 대출해주었다며
문자로 오빠 밥사주세요 합창을 하는 여자아이들, 날 믿고 따르며 형형하며 힘들 땐 기대려고 하는 남자아이들 이런 애들을 대하는 건 정말 또 다른 재미같다. 그리고, 학번차이가 나도, 동갑인 녀석과 금세 마음이 통해 급속도로 친해져 그들에게 대학생활에 관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남들은 할 수 없는 매력이다. 조모임 때 오빠 형 동생하며 그래도 대학을 좀 더 다닌 내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에 발휘를 하는 차이면, 아이들은 참으로 고마워하기도 한다.

잃는 것만 있는 것은 없다.

어차피 대학을 늦게 들어왔다면, 최소한 획득할 수 없는 건 접어두더라도 자신이 찾을 수 있는 건 다 찾아야하지 않겠는가. 현역들이야 선배들이 알아서 밥을 사 주고 자신이 가만 있어도 친구들이 쉽게 쉽게 생기고 동아리 들어가도 대환영 분위기지만, 삼수이상 학생들이야 그게 어디 쉬운가.
자기보다 어리거나 동갑인 애에게 밥사달라고 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고, 동아리에 가도 특정
동아리에선 아예 자격기준도 안 되고, 좀 부담스러워할 수 있음을, 나도 안다.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동아리에서조차 나는 들어가서 그냥 속칭 (나는 꼬마들이라고 부른다) 꼬마애들과 즐겁게
주점도 하고, 그냥 때론 형 오빠로, 어쩔 땐 친구같은 형 오빠처럼 다정하게, 매섭게 하면서 지금까지 흘러온 듯 싶다. 엠티 때 내가 차를 끌고 애들 힘들게 교통 이용할거 바로 태우고 가는 날이면, 언제 또 이런 걸 해보겠는가. (꼭 차가 아니라도 여러 방법은 많다)



만약 당신이 예비대학생이라면, 어떻게 아까 내가 말한 자신의 룰과 체제의 룰을 조화시킬까 그 노력을 하라.

그리고 만약 당신이 삼수이상 수험생이라면, 일단은 저런거 신경쓰지 말고 무조건 공부하라.

난 이렇게 생각한다. 너희들, 그러니까 삼수이상한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차이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하느냐 아니냐.. (물론 어디나 예외는 있겠지만) 그 차이로 본다. 가만이
누군가 해주겠지 하며 중고등학교 때 휘황찬란했던 자신의 인간관계만을 추억하다간(내가 그랬다)
정말 소중한 기회들을 놓치기 쉽다.

제목이야 거창하게 대학에서 살아남는 법..이라고 썼지만 사실은 별 거 없다. 바로 저 차이다.

그리고, 나는, 정말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은 너희들이 부디 저 노력들을 게을리하지 않고 정말 보람있는 캠퍼스라이프를 보내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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