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의사 [310239] · MS 2009 · 쪽지

2010-11-21 06:44:12
조회수 2,763

수능을 망친 고3 학생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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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능 좀 어려웠지요?

생각보다 점수가 나오지 않아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을 많은 후배들에게 그냥 짧은글 생각나는대로

몇자 적어볼까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수능을 본건 96년도 이맘쯤이었습니다. 그 어렵다는 불수능 97 수학능력시험..

시험장에서 언어 푸는데 마지막 지문만 20분정도 읽고 또 읽었는데 4문제 중에서 2문제 맞추고...

그나마 가장 자신있어하던 수학에서 6~7문제를 손도 못대보고 찍고...

외국어는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수능 치고 학교 정문 나서는데 자꾸 눈물이 나올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정말 잠시였어요. 슬픔은... 그냥 수능이 끝나서, 그 지겹던 수능이 어떻게든 끝나서

마냥 좋았지요. 다음날 수능 채점해보고 고3 기간 동안 10번도 넘게 봤던 모의고사 최하점보다

더 낮은 점수가 나온걸 보고 순간 멍했지만 어떻게 되겠지란 생각에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지요.

한달여라는 시간이 지나 수능점수가 나오고 (가채점과 0.5점도 다르지 않게 정확하게 나오더군요^^)

점수에 맞춰 대학을 쓰고 전라북도 촌놈이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 오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학점 관리는 하지 않고 그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그리고 대학 2학년을 마칠쯤

군대에 갔고 30개월 군복무 잘하고 다시 복학할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었지요...

그때 제 나이 24살... 작은 보습학원에서 학원강사를 했습니다. 수학을 가르쳤지요.

수학 공부해본지 너무 오래되서 퇴근하면 정석 풀고... 다시 학원가서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우고...

그때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 제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보내고

아무생각없이 원하지도 않은 대학에 가서 그냥 별 생각없이 지냈던 시간들을...

그때서야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에서 대충대충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니

그전에 몰랐던 제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고2때 공부가 뭔지, 인생이 뭔지 방황했던 시절...

고3때 다시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공부가 잘 되지 않아 대충 보냈던 하루하루...

당연한 결과로 받은 초라한 수능점수...

사실 수능을 망친게 아니라 그냥 그 점수가 제 실력만큼 나온 점수였습니다.

거의 5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내서야 깨달았습니다.

수능을 망쳤다는 생각으로 5년이라는 시간을 대충 보냈구나. 꿈도 목표도 없이 보낸 5년...

그 시작은 바로 수능을 망쳤다고 생각한 그 시간 이후였습니다.

대충 대학들어가고 대충 학점관리하고 어떻게 되겠지란 생각을 가진게...

바로 97수능 이후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제가 받은 수능점수는 제 인생에 별개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 점수가 내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점수에 맞춰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정말 열심히 했더라면...수능이라는 시험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좀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그렇게 쉽게 제 소중한 인생을 대충 보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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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고3 여러분...

생각보다 시험을 못 봤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시험의 난이도로 인해 전체적으로

수능점수가 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수능을 망쳤다는 생각으로 대충 대충 하루하루를 보내지

마시라는 겁니다.

여러분 원래 꿈이 있고 목표가 있지 않았었나요?

그 꿈이 수능이라는 시험으로 끝날리 없습니다.

설사 원하는 대학에 못가면 어떻습니까...

결코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다른 공신 분들의 말처럼 여행도 다니시고

아르바이트도 하시고 이성교제도 하시구요^^

설사 수능을 망했을 망정 여러분의 아직 피지 못한 찬란한 인생이 망가지면 너무 아깝잖아요^^

전 고2때까지 의사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2때 모의고사 점수가 많이 떨어져

아주 쉽게 꿈을 포기했었지요. 그리고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고 대충 대충 5년 보낸 후

깨달았습니다. 다시 내 꿈을 이루자..

2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도서관 다니며 수능 공부하는 내 모습에 초라함을 느끼며..

떨어지면 어떻하지라는 불안감에 잠을 설치며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구심을 매일 가지며...

힘겹게 2003년도에 수능을 다시 보게 되었지요..

지금 33살이라는 나이에 병원에서 힘들지만 나름 즐겁게 인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내 버려진 5~6년을 후회하면서... 그때 좀 더 치열했다면...이란 생각도 해보구요.

저와 마찬가지로 원하지 않던 대학에 들어간 제 친구가 있습니다. 서울대를 원했지만

지방대 수학교육을 들어갔지요. 원래 꿈이 학교 선생님인데 서울대 나온 선생님은 되지 못 했지만

지금 훌륭한 수학선생님이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수능 망했다는 생각에 여러분의 꿈을 잃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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